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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호 Vol. 346

평화를 노래한 시간

SPECIAL ┃남북한 음악 교류의 역사

 

다시 맞은 남북 화합의 시기에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준비한 공연은 아리랑으로 호명된 민족과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자는 시대의 요구를 담았다. 공연에 앞서 분단 이후 남북한 음악 교류의 역사를 살펴본다.

 

 

 

올해 이른 봄부터 남과 북은 온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관계 회복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판문점?평양에서 열린 정상회담과 음악 공연 역시 한동안 얼어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지난 2월 1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진행된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 말미에 가수와 연주자들, 그리고 그들의 노고에 환호를 보낸 우리 국민의 마음이 통했는지 다들 눈가가 촉촉해진 기억이 있다. 2002년 8.15 민족통일대회 북측예술단 초청 공연 이후 16년 만에 남쪽을 찾아온 북한 음악인들은 그렇게 다시 한번 친근한 인상을 주고 돌아갔다.


분단 이후 남한과 북한의 교류는 1971년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1985년 제8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일반인들이 남한과 북한에 고향방문단이라는 이름으로 방문하게 됐고, 남북문화예술단 교류 공연을 위해 서울예술단은 평양에서, 평양예술단은 서울에서 각각 공연을 열었다.


남북한 음악 교류의 첫 행사인 만큼 남북은 민족의 전통 가무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며, 정치적 성격을 배제하고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중상을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따랐다. 서울예술단은 무용 ‘태평성대’, 대중가요 ‘눈물 젖은 두만강’, 가곡 ‘그리운 금강산’ 등 18개의 프로그램을 준비했고, 평양예술단은 무용 ‘금강선녀’, 신민요 ‘노들강변’, 장새납 독주 ‘그네 뛰는 처녀’ 등을 선보였다.


1985년 서울 국립극장과 평양대극장에서 각각 열린 공연은 분단 이후 남북 예술 교류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남북이 각각의 방식으로 만들어낸 문화 유형이 너무도 달랐을 뿐 아니라, 그런 다름을 처음 마주했기에 상대방의 문화에 대한 충격은 매우 컸다. 처음에는 서로에 대한 비방의 논조가 역력했으나 결과적으로 남북 모두 상대방의 음악을 연구해야 한다는 점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 특히 북한 연주단이 선보인 장새납 등 개량악기 연주는 전통음악 연주자들이 악기 개량의 의지를 피력하는 단초가 됐다.


이후 1988년 월북 음악인의 분단 이전 행보와 작품에 대한 거론을 금기시하던 관행과 연구 금지를 해제하는 월북 음악인 해금 조치가 남한에서 이뤄졌다. 분단 이후 그간 언급조차 꺼리던 한애순의 스승 박동실, 공옥진 집안의 공기남, 가야금 명인 안기옥과 최옥삼, 창극 배우 조상선과 정남희 등과 1930년대를 풍미한 작곡가 이면상과 가수 왕수복·선우일선 등의 이름을 거론할 수 있게 되었다.

 


1990년 10월에는 범민족통일음악회(위원장 윤이상)를 계기로 결성된 서울전통음악연주단(단장 황병기)이 평양에서 연주회를 열었으며, 이어 12월에는 평양민족음악단(단장 김원균)이 예술의전당과 국립극장에서 남북음악인들과 함께 송년 통일전통음악회를 열었다. 서울전통음악연주단은 범민족통일음악회에서 시조와 동요, 민요, 사물놀이 등을 연주했다. 평양에서 열린 이 연주회는 여러 가지로 북한 문화예술계에 영향을 미쳤다. 먼저, 남한 연주단의 시조 연주로 하여금 북한 문학계에 시조를 재인식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 또한 북한은 사물놀이 연주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었는데, 이는 과거의 음악 유산이 아닌 현대화된 전통음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후 북한에서도 사물놀이와 비슷한 연주 형태가 다수 발견된다. 민요 연주 중에선 서도민요가 의미심장했다. 전승 지역을 벗어나 음악 전수에 힘쓴 월남 음악인 오복녀와 그녀의 제자 김광숙이 무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북한 땅에서 시작된 음악을 남한의 음악인이 전승하고 있다는 사실에 북한 문예 담당자들은 적잖이 놀란 마음이었다. 그 때문인지 12월 평양민족음악단의 방북에는 일제강점기 서도민요 명창으로 이름을 날린 김관보가 무대에 올라 관심을 끌었다.


이처럼 1990년에 열린 연주회는 남한과 북한 모두에 민족 공동체라는 인식을 갖게 해주는 공연이었다. 1985년 첫 만남 이후 비판과 비난에서 벗어나 양쪽 모두 좋은 점을 부각하려 한 첫 연주회였다.

 

단절과 재개를 반복하며 확장되는 남북 교류
음악계에서는 1990년 이후 지속적인 음악 교류가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교류는 곧 중단됐다. 북한의 ‘고난의 행군’ 종식 선언 이후인 1998년이 돼서야 남북 정치계는 다시 교류를 준비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민족 공동체론에 입각해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경제 교류와 함께 10여 년간 문화 교류가 이어졌다. 1998년 5월 리틀엔젤스예술단이 방북해 평양의 봉화예술극장과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서 공연했다. 이를 시작으로 제1회 윤이상통일음악회(1998년 11월, 평양 모란봉극장), 2000년 평화친선음악회(1999년 12월, 평양 봉화예술극장), MBC 주최 제1회 민족통일음악회(1999년 12월, 평양 봉화예술극장), 평양학생소년예술단 서울 공연(2000년 5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등이 연이어 진행되면서 2007년까지 남북의 음악 교류 공연이 18차례 열렸다.


그러나 남북의 음악 교류는 주로 남에서 북으로 향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 공연 중 북한 연주단이 방남해 서울에서 공연한 건 3회에 불과하다. 2000년에 개최된 평양학생소년예술단 공연과 남북교향악단 합동연주회(2000년 8월, KBS홀·예술의전당 콘서트홀), 8.15 민족통일대회 북측 예술단 초청공연(2002년 8월, 코엑스 오디토리움)뿐이다.


이 시기 남북의 음악 교류는 그 관계에 따라 단절과 재개를 반복하기는 했지만, 그 횟수가 늘어나면서 교류의 범위가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가요와 서적의 저작권 협약(2005년 12월)이 체결되고, 북한 가요를 남한의 가수들이 부른 통일음반 ‘동인’이 발매(2007년 6월)되기도 했다.
또한 남한 사람들의 방북이 늘어났고, 북한 인민의 실상이 TV를 통해 방영되면서 북한에 대해 적개심을 갖기보다는 인도적 지원의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함께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의 리진혁 군과 같은 스타가 탄생하는 일도 있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1980년대에 비해 음악 교류가 활발해졌다. 특히 분단 이후 달라진 음악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북한음악을 연구하는 이들이 증가하면서 다양한 북한음악 자료를 접하게 되고, 이 과정 속에서 북한음악에 대한 이해 역시 20세기보다는 좀 더 깊어졌다. 실례로 북한 작곡가 최성환의 1976년 작품인 ‘관현악 아리랑’은 현재 남한의 많은 악단에서 연주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다. 또한 거문고로 연주하는 ‘출강’(작곡 김용실),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도라지’(작곡 황금산), 북한 옥류금 연주 등이 2000년대에 우리 사회에 소개돼 현재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러한 음악은 남북 교류 중에 남한에 소개된 것도 있지만, 옌볜 조선족 음악인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음악에 대한 갈증은 해소되기 어려웠다. 직접적인 교류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다시 만난 아리랑-엇갈린 운명, 새로운 시작’은 북한음악을 알고자 하는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해줄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올해는 월북 음악인 해금 조치가 내려진 지 30년이 된 해이고, 한반도 남북의 정치 지도자들이 어느 때보다도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준비한 이번 연주회는 남북의 음악 교류를 촉진해야 한다는 열망을 반영하고 있기에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이번 연주회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모두 다섯 곡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두 곡을 위촉해 공연의 처음과 끝에 배치하고, 처음 선보이는 북한 작품 세 곡을 편곡해 연주함으로써 지속적인 남북한 음악 교류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분단 이전에 공유한 ‘민요’를 주제로 한 작품과 흥겨운 민족 정서를 바탕으로 한 민족관현악곡을 선택했다. 분단 이후 북한에서 창작된 관현악과 민족관현악은 대체로 서사를 담은 가요나 잘 알려진 곡을 모티프로 창작된다. 인민에게 익숙한 노래 선율을 사용하면 기악곡을 성악곡처럼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전제 때문이다. 이러한 창작 방식은 1970년대 소위 ‘기악혁명’ 과정 속에서 정착됐다. 대체로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처음에는 원곡의 선율을 연주하고 두 번째는 속도와 악상을 달리해 변주하며, 마지막에는 원곡을 다시 연주함으로써 각인시킨다. 이번 공연에서 연주될 작품도 이러한 창작 혹은 변주·편곡 방식을 이해한 후에 감상하면 좋을 것이다. 더욱이 높은 음악적 완성도와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이 돋보이는 작품을 선정해 수준 높은 북한의 관현악곡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북한음악만이 아니라 작곡가 김대성과 김성국에게 위촉한 두 곡이 기대를 모은다. 김대성의 ‘통일을 위한 반달 환상곡’은 동요 ‘반달’을 모티프로 삼아 완성한 국악관현악곡이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윤극영이 1920년대에 작곡한 동요 ‘반달’은 20세기 국내 최초의 동요집 ‘반달’(1926)에 수록된 곡으로, 서정적인 가사와 선율로 식민지 시기의 암울함과 적막함을 표현했다. 북한에서는 ‘반월가’라고도 하며, 남북한 어린이뿐만 아니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한민족 모두가 공감하는 노래다. 이 밖에 작곡가 김순남이 북한에서 채보한 토속민요와 황해도 곡산에서 김대성이 채보한 ‘자장가’도 곡의 모티프로 활용된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고 누구나 흥얼거리는 동요의 선율을 국악기의 부드러운 음색으로 구현함으로써 남북한이 전통 사회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여전히 민족공동체임을 말한다.


이번 공연의 피날레는 김성국 작곡 ‘국악관현악과 합창을 위한 원(願’)으로 장식한다. 이 작품은 정치와 이념을 뛰어넘어 화합하는 인간의 본성을 그린 시에 곡을 붙여 합창과 관현악이 어우러지는 칸타타다. 합창단 60명이 국악관현악 연주와 함께 어우러짐으로써 힘차고 조화로운 울림을 기대하게 한다.


다시 맞은 남북 화합의 시기에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준비한 ‘다시 만난 아리랑-엇갈린 운명, 새로운 시작’은 아리랑으로 호명된 민족과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자는 시대의 요구를 담은 연주회다. 2018 남북정상회담, 삼지연관현악단 방남 공연, 평양에서 열린 남북 합동공연 ‘봄이 온다’ 등 최근 남북한 문화 교류가 활발히 재개되고 있다. 이에 발맞춘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공연이 북한의 아름다운 관현악곡을 재조명함으로써 음악을 통한 남북한 교류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배인교 경인교육대학교 한국공연예술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남북한 문화예술의 소통과 융합방안연구’에 관한 논문 25편을 발표했으며, 현재 북한의 민족음악교육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사진제공 (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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