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일은 ‘입동(立冬)’이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에 겨울의 풍경을 담은 ‘정오의 음악회’를 만나보자.
옛사람들은 사계절을 각각 여섯 부분으로 나눠서 농사의 기준으로 삼곤 했다. 24절기에 맞춰 씨를 뿌리고, 모내기를 하고, 김을 매고, 추수를 하고, 월동 준비를 했다. 물론 절기라는 것이 중국 화북지방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애당초 우리나라에 잘 맞지 않는 부분이고, 요즘은 기후변화 때문에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절기’는 입춘·입하·입추·입동처럼 계절을 준비하게 해주고, ‘경칩이 되면 어디선가 개구리가 깨어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또한 곡식에 이로운 비가 내리는 ‘곡우(穀雨)’나 햇볕이 풍부해서 만물이 점점 생장해 가득 찬다는 ‘소만(小滿’)은 계절의 변화를 멋들어지게 표현한 절기라는 생각이 든다. 11월 7일은 ‘입동’이다. 그리고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에 열리는 ‘정오의 음악회’에서는 우리가 곧 맞이할 겨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차분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의 배우, 박정자가 해설을 맡아 겨울 풍경에 한층 깊이를 더할 예정이다.
첫 번째 풍경은 하얀 눈이 쌓인 공원이다. 사랑하는 남녀가 눈밭 위에서 즐겁게 ‘눈 장난’을 하고 있고 귀에 익은 음악이 흐른다. 사랑 영화의 대명사 ‘러브 스토리’의 삽입곡 ‘눈 장난(Snow Frolic)’으로 정오의 음악회 문을 열며 이 영화의 주제곡 ‘러브 스토리’와 영화 ‘남과 여’의 주제가 ‘남과 여(Un Homme Et Une Femme)’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겨울’을 주제로 꾸며지는 두 번째 무대는 이용탁 작곡의 대피리 협주곡 ‘대화’다. 대피리는 피리를 개량한, 서양의 클라리넷과 비슷한 모양을 지닌 악기로 전통 피리 특유의 매력적인 음색과 풍성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색을 가지고 있다. 이 음악은 2악장으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 악장에서는 빠른 패시지와 다양한 변박으로 긴장감을 주기도 하지만 대피리 특유의 시김새를 충분히 음미할 수 있고, 이어지는 2악장에서는 대피리의 느리고 서정적인 선율이 국악관현악단과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이들의 대화는 봄날의 가벼운 대화도, 여름의 뜨거운 논쟁도, 가을의 서정적인 대화도 아닌 ‘어느 겨울밤의 대화’인 듯하다. 겨울은 사람들 간의 간격이 좁아지는 계절이다. 덥고 끈적한 여름에는 멀찍이 떨어져서 각자의 영역을 확보하지만 겨울이 되면 사람의 온기가 정겹게 느껴져 옹기종기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곤 한다. 요즘은 거의 잊힌 모습이 됐지만, 예전에는 겨울 저녁이 되면 난로가 있는 거실에, 혹은 아랫목에 가족들이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리고 더 옛날에는 질화로를 가운데 놓고 옛이야기를 들으며 밤을 톡톡 구워 먹기도 했을 것이다.
겨울밤, 누군가는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겪을지도 모른다. ‘대화’에 이어지는 무대는 헤어졌던 남매 송화와 동호가 눈 내리는 밤에 만나 인연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창극 ‘서편제’ 중 ‘겨울’을 선보이는데, ‘서편제’는 영화로 잘 알려져 있지만 원작은 고故 이청준 선생의 소설이다. 연극으로, 뮤지컬로 그리고 창극으로도 무대에 올랐다. 특히 창극 ‘서편제’는 2013년 국립극장에서 초연돼 호평을 받은 뒤,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창극은 판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음악극이기 때문에 창극배우들은 소리와 연기를 두루 잘해야 한다. 다방면에서 역량을 발휘하며 국립창극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금미·이광복 단원이 송화와 동호 역으로 무대에 선다.
창극과 마찬가지로 노래와 연기를 두루 갖추어야 하는 음악극이 있다. 바로 뮤지컬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역량 있는 창극단원뿐 아니라 팔방미인 뮤지컬 배우 김호영도 만날 수 있다. 2002년 뮤지컬 ‘렌트’로 데뷔한 김호영은 방송을 통해서도 잘 알려진 배우로, 이번 공연에서는 뮤지컬 ‘맘마미아’의 ‘머니 머니 머니’를 비롯해 영화 ‘왕의 남자’ 사운드트랙 중 ‘인연’, 그리고 뮤지컬 ‘광화문연가’ 중 ‘애수’를 선보인다. 뮤지컬과 영화음악이 국악관현악 반주를 타고 어떻게 표현될지 기대된다.
11월 ‘정오의 음악회’의 마지막 곡이자, 2018년 공연의 대미는 ‘한반도의 아리랑’(작곡 이의영)이 장식한다. ‘정오의 음악회’는 매 공연 새로운 지휘자를 영입해 다양한 음악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으며 11월의 지휘자는 진성수다. 지휘자 진성수는 현재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악장 겸 지휘자로 활동 중이며, 섬세하고 깊이 있는 음악적 해석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가 직접 선곡한 ‘한반도의 아리랑’을 국립국악관현악단과 어떻게 풀어갈지 기대된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는 봄을 지나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 여름이 가고, 황국단풍 멋들어진 가을을 보내면 월백설백천지백(月白雪白天地白)한 겨울이 온다. 무정세월은 덧없이 흘러간다지만 우리에겐 또 다른 봄·여름·가을·겨울이 남아 있다. 2018년 사철을 함께했던 ‘정오의 음악회’는 11월 공연을 끝으로 잠시 휴지기에 들어간다. 불교의 동안거처럼 내실을 기하는 시간을 보낸 뒤 내년 봄, 2019년 3월에 다시 팬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화창한 봄날에 다시 만날 ‘정오의 음악회’도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글 박근희 1995년 MBC TV ‘새미기픈믈’로 방송 활동 시작, KBS 클래식FM과 국악방송 등에서 라디오 원고를 썼다. 공연·영화·칼럼·기사 쓰기 등 국악과 관련된 많은 일을 했지만 여전히 모든 것이 새롭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정오의 음악회’
날짜 2018년 11월 7일
장소 국립극장 하늘극장
관람료 전석 2만 원
문의 국립극장 02-2280-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