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화해 분위기 속에 지금 우리는 북한 문화에 어느 때보다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대중음악은 어떻게 변화·발전했을까.
북한식 대중음악의 출발, 보천보전자악단
엄밀하게 말하면 북한에는 남한과 같은 개념의 대중음악이 없다. 대중음악을 향유하는 일반적인 의미의 대중과 대중매체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모든 문화는 당에서 기획하고, 창작 내용을 검열하고, 유통을 관리한다. 다만 당 정책가요나 송가(頌歌)와는 다른 ‘생활가요’가 우리의 대중음악과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생활가요는 정치적인 목적이 상대적으로 덜 드러나고 평범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인민성’이 강한 음악을 일컫는다.
특히, 보천보전자악단으로 대표되는 전자음악의 출현을 그 시작으로 볼 수 있다. 1983년 왕재산경음악단이 결성되고 뒤이어 1980년대 중반 전자음악을 전면에 내세운 보천보전자악단이 등장했다. 그들의 음악은 기존 악단이 추구하던 음악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새로운 음악이었다. 힘차거나 무겁거나 장중한 스타일이 아니었다. 신시사이저와 전자기타 사운드를 중심으로 한, 경쾌하고 밝은 ‘개인의 노래’였다. 생활 속에서 접할 만한 내용으로 편히 부를 수 있는 노래, 즉 대중음악(이라 할 수 있는 생활가요)이었다.
1980년대에 처음 선보인 생활가요는 지금도 북한에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남녀의 애틋한 감정을 싣기도 하고, 잔칫날에 즐겨 부르는 노래도 있다. 남한에 알려진 북한 가요 대부분이 그러한 경우다. ‘휘파람’ ‘도시처녀 시집와요’ ‘날보고 눈이 높데요’ ‘아직은 말 못해’ 등이 그 예다. 사회주의를 주제로 하면서 연주곡 요소를 가미한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 ‘내 나라 제일로 좋아’ ‘사회주의 지키세’도 있다.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한 민요 ‘옹헤야’ ‘노들강변’ ‘도라지’ ‘밀양아리랑’ ‘풍년가’ ‘군밤타령’ 등도 생활가요로 분류할 수 있는 노래다.
이들이 여전히 인기를 얻는 데에는 생활 속 이야기를 소재로 한 가사와 친숙한 리듬, 그리고 신시사이저와 전자기타 등이 주는 매력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북한 전자음악의 기본은 민요조라고 한다. 전자음악이면서도 민요조를 강조하는 것은 명분 때문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전자음악은 서양음악이다. 그것도 클래식과는 거리가 먼 현대음악, 즉 북한이 경계하는 자본주의적이고 퇴폐적인 음악이다. 그러나 대중적인 인기는 어쩔 수 없었다. 남한이 그랬듯이 북한에서도 1980년대 중반 디스코 열풍이 불었다. 아무리 폐쇄적인 국가라고 해도 국제적인 트렌드를 온전히 막아낼 수는 없었다.
북한의 새로운 세대, 즉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의 등장과 맞물린 새로운 음악에 대한 환호를 마냥 통제할 수만은 없었다. 접점을 찾기로 했다. 우리식 음악을 하자. ‘귀청을 째는 듯한 이지러지고 소란스러운 파열음과 불협화음, 광신적인 음으로 노래 자체를 기형화’한 서양의 퇴폐적인 헤비메탈이나 로큰롤이 아닌 건전한 전자음악이 필요했다. ‘사람들의 혁명의식과 민족자주의식을 마비시키고 부화타락’하게 만드는 서양식 전자음악이 아니라, 새로우면서도 건전한 북한식 전자음악이 필요했다. 북한 음악에서 그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낼 만한 요소는 민요였다. 민요조를 기본으로 서양의 전자음악을 수용한 북한의 전자음악은 이렇게 탄생했다. ‘북한식’을 명분으로 전자음악의 대중성을 활용하면서, 분위기 전환을 통해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했다.
김정은 시대의 아이콘 모란봉악단
북한식 전자음악을 선보인 보천보전자악단과 왕재산경음악단은 창단부터 열광적인 인기를 얻었다. 북한음악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형식과 경쾌한 리듬, 귀에 감기는 가사, 화려한 패션과 퍼포먼스의 가수들을 보면서 인민은 매료되었다. 지금도 탈북민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꼽을 때 빠지지 않고 손에 꼽히는 음악이다.
북한의 생활가요를 주도한 것은 보천보전자악단이었다. 왕재산경음악단도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지만 역할이 달랐다. 왕재산경음악단은 경음악 연주와 무용을 중심으로 한 공연을 주로 선보였다. 반면 보천보전자악단의 주무기는 방송과 노래였다. 보천보전자악단은 반짝이는 의상과 화려한 머리 장식, 그리고 맛깔난 노래로 인기몰이를 했다. 그들의 공연과 음반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김광숙·전혜영·리경숙·조금화 등의 가수들은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그렇게 1980년대를 풍미한 보천보전자악단의 활동은 조금씩 주춤해졌고,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이상한 소문도 있었다. 어느 가수가 탈북했고 그로 인해서 해산되었다는 소문에, 최고 지도자와의 스캔들도 있었다. 물론 풍문이었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이듬해인 2012년부터 진행된 회고음악회를 통해 보천보전자악단원들의 근황이 알려졌는데, 이런저런 소문은 그저 엄청난 인기를 모았던 보천보전자악단의 활동이 뜸해지고 이후 전자음악을 찾기 어려워지면서 생긴 루머였다.
새로운 전자악단의 창단 소식은 김정은 체제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없었다. 2009년 1월 삼지연악단과 같은 해 5월 은하수관현악단이 창단됐지만, 삼지연악단은 정통 클래식 연주를 하는 클래식음악단이었고, 은하수관현악단 역시 클래식 음악과 관현악을 중심으로 연주하는 클래식 연주단이었다. 대중음악이 다시 시작된 것은 김정은 체제가 시작된 2012년 7월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창단했다는 모란봉악단이 창단 공연을 하며 첫선을 보였다. ‘아리랑’ 연주를 시작으로 공연은 두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특히 새로운 막과 함께 시작된 2부의 첫 곡은 할리우드 영화 ‘록키’의 주제가였다. 연주하는 동안 무대 뒤로 영화의 장면도 등장했다. 이어서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줄줄이 연주했다. 무대에는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곰돌이 푸 인형이 등장했다. 김정일 사망 1주기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파격적인 무대로 첫선을 보인 모란봉악단은 이후 북한의 주요 행사나 명절에 열리는 축하 공연을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모란봉악단은 혁신과 변화를 요구하는 김정은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공연에서는 ‘세계명곡’이라는 테마로 클래식음악과 미국·러시아·이탈리아 민요가 연주되었다. 무대만 놓고 보면 북한 악단의 공연이라는 것을 알기 어려웠다. 그런 북한 가요계의 변화를 남한에서 직접 체험하게 된 것은 올해, 2018년이다.
남북 대중음악의 만남, 그리고
평행선을 그리던 남북이 2018년 본격적인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2018년 1월, 북한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선언했고, 다음 달엔 친선교류의 일환으로 북측 예술단인 삼지연관현악단 140여 명이 방남해 서울과 강릉에서 두 차례 공연을 펼쳤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 성공 기원 축하공연’으로 시작된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에서는 북한의 노래뿐만 아니라 남한의 노래와 클래식 및 세계 민요를 연주했다. 김옥주와 송영이 부른 ‘J에게’를 비롯해 우리에게 익숙한 남한 대중가요를 연이어 불렀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것은 평양 귀환 공연이었다. 2월 16일 평양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열린 삼지연관현악단의 귀환 공연에서는 클래식·민요 명곡 모음 관현악 ‘친근한 선율’에 이어 여러 곡의 남한 노래들을 무대에 올렸다. 최룡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당 중앙위원회 간부들과 예술부문 일군들, 창작가 등 예술인이 관람하는 자리였다. 최고위급 당 간부들이 참가한 공연에서 북한예술단이 남한 노래를 불렀다는 것은 남한 가요에 대한 해금(解禁)과도 같다. 적어도 공연에서 불린 남한 가요 정도는 이제 북한에서 불러도 문제 삼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미 남한 가요는 북한에 꽤 많이 알려져 있다. 지난 4월 진행된 남한 예술단의 방북 공연을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첫날 공연에서 가수 최진희는 자신의 히트곡이 아닌, 듀엣 ‘현이와 덕이’의 노래 ‘뒤늦은 후회’를 불렀다. 이유는 나중에 밝혀졌는데,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북측이 특별히 ‘뒤늦은 후회’를 요청했다고 한다. 공연이 끝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진희에게 “그 노래를 불러줘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뒤늦은 후회’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즐겨 부르던 노래였다. 아버지의 애창곡을 불러줬으면 좋겠다는 아들의 요청이었다.
남북의 대중음악이 만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하지만 만남을 위해서는 70년에 가까운 분단의 벽을 넘어야 한다. 최근 북한 예술단의 행보를 보면 전면적인 교류는 어렵더라도 함께할 수 있는 여지는 많아지는 것 같다. 그 단초는 2018년 2월에 삼지연관현악단이 남한 공연에서 선보인 노래 ‘달려가자 미래로’다. 짧은 팬츠에 민소매 상의를 입고 활기찬 율동과 함께 부른 ‘달려가자 미래로’는 차이가 크게 두드러지던 이전과는 달리 대중음악의 감수성 측면에서 어느 정도 공통점을 모색할 만한 무대였다. 삼지연관현악단이 부른 ‘달려가자 미래로’는 북한에서는 모란봉악단의 노래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 공연에서는 북한식 칼군무를 선보이는 무용곡으로 더 많이 활용된다.
북한 예술단의 최근 공연을 살펴보면 ‘예상 밖’이라고 할 만한 장면이 어렵지 않게 보인다. 물론 아직 대부분의 공연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수령 송가나 혁명가요, 당정책가요들이다. 그러나 정치 색채가 짙은 가요를 전면에 배치하면서도 예전에는 볼 수 없던 ‘현대무용’을 선보이고 있다. 이런 공연은 무대 구성과 연출 방식, 연주 방식에서 이전과는 판이한 양상이다.
무대 공연을 주도하는 예술단은 왕재산예술단*이다. 왕재산예술단은 다른 예술단과의 협력 무대인 종합공연은 물론 전국 순회공연을 통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2016년에는 삼지연군에서 연 공연을 비롯해 량강도 순회공연, 청진공연, 흥남비료련합기업소 공연, 평안남도 순회공연, 평양 공연 등 130여 회 공연을 진행했고, 2017년에도 활발한 활동을 선보였다. 공연에서는 ‘가리라 백두산으로’ ‘사랑의 빛발’ 등 혁명적 열의를 북돋우는 노래를 중심에 놓으면서도, 타프춤 ‘청춘시절’ ‘명랑한 취사병’과 현대무용도 포함했다. 타프춤은 ‘탭댄스’의 북한식 표현이다. 북한 가요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하기는 하지만 서양의 탭댄스를 무대에 올린 것이 주목할 만하다. 최근 왕성하게 전국 순회공연을 진행한 왕재산예술단의 행보는 북한 대중문화의 현재를 가늠할 만한 척도다. 그렇게 북한의 대중문화는 ‘인민성’을 기본으로 점차 ‘대중성’을 더하고 있다.
*왕재산예술단의 전신은 보천보전자악단과 함께 북한 대중음악의 시작을 알린 왕재산경음악단이다. 왕재산경음악단은 오랜 침체기를 보내고 2011년 ‘왕재산예술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글 전영선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그림 김성경 일러스트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