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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호 Vol.348

몸과 소리로 시를 만나는 방법

SPECIAL┃노래하고 연기하는 네 배우

 어떠한 특수 장치도 없이 몸과 소리로 장면을 그려오던 네 배우가 만났다.

‘신(新)’창극이라는 새로움과 ‘시(詩)’라는 소재를 앞에 두고 어떤 생각과 기대를 품고 있을까.

같은 듯 다른 네 명의 배우가 합을 맞춰가는 지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때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소재로 창극 ‘시(詩, Poetry)’를 만들기 위해 한창 연습 중인 유태평양·장서윤·양조아·양종욱, 네 배우를 만났다. 시라는 문학 장르, 전통음악인 판소리, 그리고 연극이 만나 어떤 모양새의 창극이 만들어질지 쉽게 상상할 수 없었지만 모든 경험과 지식을 떠올려 작업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양손프로젝트의 작품을 감상할 때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소설 속 몇몇 장면이 클로즈업 화면을 보듯 눈앞에 다가왔던 경험이다. 이때 이야기는 배우의 말뿐만이 아니라, 가방에서 꺼낸 빵 냄새로,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흐르는 느낌으로, 시야에서 멀리 사라지는 기차의 고동 소리로 다가왔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무대장치 없이 오로지 배우의 육성과 몸으로 구현해낸 것들이다. 이어 국립창극단을 떠올리니 자연스레 우리 소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양손프로젝트의 작업에서 근거리의 생생함을 느꼈다면, 국립창극단에서 배우들이 구사하는 판소리에서는 풍경을 멀리 내다보는 경험을 했다. 빌딩이 꽉꽉 들어찬 도시에서 뭔가를 멀리 내다볼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하지만 판소리를 통해서는 전국의 경치를 먼 거리에서 바라보며 유람하는 경험이 가능했다. 이 또한 어떤 특수 장치 없이 배우의 소리를 통해서만 만들어진 장면이었다. 몸과 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방식은 같지만 관객에게 다가가는 방식에는 이렇듯 차이가 있다.


연습실을 방문한 날은 배우들이 서로 만나 연습을 시작한 지 열흘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연습 초기 단계라서 시를 무대 위에 어떻게 구현할지, 대본은 어떤 모양새가 될지, 자세히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아직 많지 않았다. 인터뷰 전 살짝 엿본 연습실 풍경도 움직임과 소리를 이용한 워크숍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공연이 올라가기 전까지 답을 찾기 위해 시도해볼 많은 가능성의 밑바탕에 움직임과 소리, 두 가지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만이 분명했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내딛게 될 수많은 발걸음 중 첫발이 될 만한 것들에 대해서 네 가지 주제로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1. 연습에 임하는 마음가짐 대본이 정해지지 않은 경우, 연습 과정에서 배우가 수행할 것이 많아지죠.

네 분은 어떤 마음으로 이어가고 있나요?
유태평양 매일매일 불안함과 기분 좋은 떨림이 반반씩 있어요. 보통 공연 한 달 전이 되면 대본과 캐릭터를 분석하고, 동선을 맞춰보곤 하는데, 이번엔 평소와 같은 과정이 아니니까 불안하면서도 한편 참 편안해요. 이런저런 워크숍을 경험하는 게 무척 새롭고 즐겁기도 하고요. 그렇다 보니 죄책감이랄까, 그런 기분이 들기도 해요. 아무튼 굉장히 즐겁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양종욱 어릴 때부터 소리를 연마해온 깊이 있는 퍼포머들과 무대에서 어떤 종류의 앙상블을 만들 수 있을지 탐색하려 재료를 꺼내놓는 과정에 있어요. 말이 아닌 몸과 소리로 서로를 알아가고 있는데, 이런 점이 공연에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장서윤 워크숍을 통해 내가 시를 어떻게 감각하는지 탐구하고 있어요. 캐릭터에 대해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서 스스로 시를 어떻게 느끼는지 더 세밀하게 보고 있다고 할까요. 파블로 네루다의 시는 추상적이라서 각자가 사적으로 시와 맺는 관계에 집중하고 있어요.

 

#2. 시를 읽는 방법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해석하는 네 배우의 방법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시를 읽고 있나요?
유태평양 저는 첫 줄과 마지막 줄을 집중해서 봤어요. 첫 줄이 제 마음에 와닿으면 그 시를 더 파고들었죠. 그런데 매일매일 시를 읽다 보니 똑같은 시라도 읽는 방법과 느낌이 항상 달라지는 것 같아요. 연습할 때도 한 문장, 한 단어를 가지고 계속 다른 목소리로, 다른 톤으로, 또는 나만의 언어로 발화하는 훈련을 해요. 그런 것들이 시를 나의 것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양조아 시를 처음 읽었을 땐, 무슨 의미인지 명확히 이해하지 못 했죠.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로 시작되는 시가 있어요. 그 구절처럼 시를 반복해서 읽다 보면 갑자기 무언가가 날 찾아온 느낌을 받아요. 그런데 막상 시로 공연할 생각을 하면 대사에 담긴 의미가 이럴 것이라는 분석을 잠깐씩 하죠.
장서윤 어딘가로 데려다주는 성격은 판소리에도 있는 특징이에요. 예를 들어서 제비가 봄 볍씨를 물고 날아갈 때, 그냥 날아갔다고 끝내면 되는데, 그 경치를 세세하게, 어느 지역의 어떤 산을 지났는지 묘사하며 노래해요. 중중모리라는 비교적 빠른 장단으로 7~8분 동안 노래하려면 아주 긴 사설이 필요하거든요. 관객 입장이라면 이야기를 쫓아가지 않아도 되는, 긴장 풀고 그 경치를 즐기면 되는 순간이죠. 공들여서 딴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도 생각해요. 그러는 사이 제비가 이동하는 곳으로 데려다 주죠.

 

 

#3. 서로의 호흡을 맞추는 과정 두 분이 소리하는 배우이기 때문에 특히, 서로의 호흡과 장단을 맞추는 과정이 중요할 것 같아요.
유태평양 장서윤 씨와 제가 소리를 하고 두 분(양조아·양종욱)이 장단을 치는 워크숍을 하고 있어요. 두 분이 판소리에 있는 장단을 다 배워서 저희가 아무 노래나 시작하면 거기에 따라서 장단을 맞춰주시는데, 너무 잘 맞춰서 깜짝깜짝 놀라요. 사람의 호흡에 따라 장단이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는 거라 맞추기가 쉽지 않거든요. 박자 감각이 없으면 진짜 어려운 건데 굉장히 잘하세요.
양종욱 최소한의 공통분모가 있다면 리듬과 장단이라고 생각했어요. 두 분(유태평양·장서윤)이 소리할 때, 그 순간을 함께하려면 장단 안에서 힌트를 발견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현재는 그걸 공감대로 삼고 있죠. 두 배우가 제 장단에 맞춰 소리할 때, 두 사람이 저한테 ‘탁’하고 다가오는 느낌이 들어요. 이들이 어떤 사람이라는 감각이 생겨요.
장서윤 그게 바로 고수랑 소리꾼이 맺는 연대 같은 거예요. 고수를 믿고 가느냐 아니냐에 따라 공연이 굉장히 달라지거든요. 판소리는 고수와 창자가 서로에게 충분히 집중해야만 에너지를 만들 수 있어요.

 

#4.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것 신창극시리즈3 ‘시(詩, Poetry)’가 관객에게 어떤 공연으로 다가가길 바라는지 궁금합니다.
양조아 전 시가 이토록 매력 있는지 몰랐어요.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는 게, 이렇게나 많이 나를 뒤돌아보게 하고, 만나게 하고, 그럴지 몰랐거든요. 관객이 저희 공연을 보고 저처럼 시에 더 큰 호감을 가지면 좋겠어요.
장서윤 우리가 무대에서 무엇을 보여주든 간에, 내용을 파악하기보다는 자기만의 사색을 맘껏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딴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공연이요.
유태평양 만약에 한 배우가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만 있는 장면이 있다면, 어떤 공연에서는 이 장면이 아무 느낌도 전하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어떤 공연에서는 ‘저 사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하면서 자꾸 파고들고 싶어져요. 관객이 무대 위 장면에 호기심을 갖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 그런 힘을 갖는 공연이 됐으면 해요.
양종욱 사람들은 무대 위 배우의 에너지 같은 것들을 느끼기 위해 공연장에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내용이나 주제를 넘어서서요. 시를 재료로 우리 몸이 어떻게 움직일지, 네 명의 퍼포머가 유기적인 하나의 생명체로 어떻게 무대에 존재하게 될지 궁금해요.
양조아 공연을 보다가 어느 한순간, 딱 한순간만이라도 관객 자신의 이야기로 만나지는 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공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가진 만남이었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시를 읽는 방식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것에 있었다. 결국 배우들이 매일매일 연습실에 모여서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시를 읽는 것’이었다. 글자로 이루어진 시를, 소리로 몸으로 다시 읽는 과정을 우리는 곧 함께하게 될 것이다.

 

전강희 영문학과 연극학을 전공하고 드라마트루그, 서울변방연극제의 프로그래밍 디렉터,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의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립창극단 신창극시리즈3 ‘시詩, Poetry’
날짜      2019년 1월 18(금)~26일(토)
장소      국립극장 하늘극장
관람료   R석 4만 원, S석 3만 원
문의      국립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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