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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호 Vol.348

방자, 이름 없고 퇴근 없는 그이

삶과 노래 사이┃'춘향가'의 무명씨 방자 이야기

좋은 노래에는 시대의 정서가 담겨 있다.
‘춘향가’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조선시대의 사회상을 곳곳에 품은 노래다.
그러나 춘향과 몽룡의 달달한 로맨스 이면에는 방자의 씁쓸함이 있었으니….

 

 

 


보고 또 보아도 지겹지 않은 ‘춘향전’. 이 소설은 조선 후기 영조·정조 때 미상의 작가가 당시 공연되던 판소리 가사를 각색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이야기의 원형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소재가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실학자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등에 등장한다. 여기 나오는 백제 여성 한주와 고구려 안장태왕(태왕이 정식 명칭)의 사랑 이야기가 ‘춘향가’와 매우 흡사하다.


백제에 몰래 숨어든 태자 시절의 안장태왕이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에 해당하는 개백현에서 한주를 사귀다가 귀국한다. 그 뒤 그곳에 새로 부임한 태수가 한주에게 반해 프러포즈를 하지만 거절당하자 한주를 감옥에 가둔다. 그는 자신의 생일잔치 때 한주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지만,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태수가 한주를 죽이려 하자, 그때 마침 안장태왕이 군대를 이끌고 와 개백현을 점령하고 한주와 재회한다. 확정할 수는 없지만 이 이야기가 춘향 이야기의 원형이라면, 서기 500년대부터 구전되어 내려오던 이야기가 조선 후기에 판소리 가사에 담기면서 성춘향과 이몽룡의 러브스토리로 재탄생했다고 해석해 봄직하다.


‘춘향가’는 문학적·음악적으로뿐만 아니라 역사학적으로도 가치를 갖는다. 작품 곳곳에 당시의 사회상을 알려주는 장치들이 배치돼 있다. ‘삼국사기’와 같은 역사서는 주요 사건을 다루는 데 집중해 당시의 문화나 가치관을 자세히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서사를 전개하는 문학작품에서는 사회상이 자연스레 드러나게 된다. ‘춘향가’에서도 1700년대 영·정조 시대 사회상을 보여주는 장치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요즘 말로 ‘서브 주연’이라 할 수 있는 방자의 존재다.

 

몽룡의 로맨스에 남용된 관노비, 방자
텔레비전이나 극장에서 한 편의 드라마·영화가 끝나면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중에는 이름 없이 행인·노점상·경찰 등으로 표기되는 배역도 있다. 방자(房子)도 그와 마찬가지라는 걸 아는지? ‘춘향가’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가운데 유독 방자만 실명이 아니다. 방자의 ‘방(房)’이 이방·호방·예방의 그 ‘방’과 같은 데서 알 수 있듯, 방자는 관청에서 일하는 사환 같은 직책이다.


대부분의 방자들은 관청에 속한 관노비였다. 자유인인 양인 신분인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대개는 관노비였고, 관청의 서리(서기)를 비롯해 일반 백성이 토지나 노비를 매매하거나 호적신고를 하고자 관청을 방문할 경우 이들을 응대하는 ‘민원실’ 직원 역시 거의 관노비였다. 국가가 이들을 행정 인력으로 충원한 것은 경비 절감을 위해서였다. 노비는 법적으로 물건이었기 때문에, 원칙상 임금을 줄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이들은 임금을 못 받는 대신 비번일 때를 활용해 생계 활동을 하거나 민원인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생활했다. 이를테면 방자는 그런 처지에 놓인 관청 직원이었다.


조선시대 형법전 중 하나인 ‘대명률직해’에 따르면 노비와 양인 사이에 분쟁이 발생한 경우 대체로 노비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처리됐다. 노비가 양인을 폭행하면 양인이 양인을 폭행한 경우보다 가중처벌했다. 폭행을 당한 양인이 불구가 되거나 치료 불가능하게 되면 노비를 교수형에 처했고, 죽으면 참수형에 처했다. 만약 노비가 폭행한 양인이 그 노비의 주인이라면, 주인이 다치지 않았더라도 무조건 참수형에 처했다. 반면 양인이 노비를 폭행하면 양인이 양인을 폭행한 경우보다 덜 엄격하게 처벌했다. 노비를 폭행한 양인이 그 노비의 주인이라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폭행의 결과로 노비가 죽더라도 주인이 관청에 신고만 하면 처벌을 면했다.


이렇게 노비의 법적 지위가 열악하다 보니, 노비 신분인 방자들은 극히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인 신분인 상관은 물론이고 그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방자들은 설령 부당할지라도 상관의 요구를 들어주며 비위를 맞춰야 할 때가 많았다. 이 같은 방자들의 처지가 ‘춘향가’에도 반영돼 있다. 아래 내용은 ‘춘향가’에서 사또 아들 이몽룡이 방자를 자신의 ‘청춘사업’에 끌어들이는 대목이다. 방자로부터 지역 관광지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이몽룡은 이렇게 지시한다.
“네 말을 듣더라도 광한루가 제일 좋구나. 광한루 구경 가게 나귀 안장 속히 지어 사또님 모르게 삼문 밖에 대령하라!”/ “예이!”


이런 식으로 이몽룡은 방자를 개인 비서로 활용한다. 춘향과의 사랑을 성취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사또 아들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관청 직원을 사적으로 부린 것과 다름없다. 만약 오늘날 이렇게 한다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나 소셜 미디어를 뜨겁게 달구며 이슈가 될 것이다. 당시에도 이런 일은 금지돼 있었다. 하지만 지방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하고 공직자에 대한 민중의 견제 장치 역시 약하다 보니, 방자 같은 관청 직원을 사적으로 활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할 수밖에 없었다. 방자의 존재는 열악한 조건에 놓인 관청 노비들의 처지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신분 질서에 도전하는 이야기
‘춘향가’에서 포착되는 또 다른 사회상 중 하나는 전통적 신분 질서에 대한 도전 의식이다. 춘향은 관기 출신 어머니를 둔 관기였다. 관기는 관노비의 보직이다. 관기를 그만둔 관노비는 다른 보직을 맡았다. 춘향이 몽룡을 만난 시점은 관기 일을 그만둔 뒤였지만, 그렇다고 관노비 신분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즉 춘향은 여전히 관노비였다.


조선시대의 법적 신분은 노비와 양인으로 구분됐다. 양반과 평민은 양인에 속했다. 만약 춘향 같은 노비 여성이 이몽룡 같은 양인 남성과 결혼하면, 그 사이에서 출생한 아이는 노비가 됐다. 노비 여성의 소유권을 가진 주인이 그 아이를 법적으로 소유했다. 이 아이가 노비 신분을 벗어나려면, 아버지가 왕족이거나 공신이거나 관료 또는 과거시험 합격자여야 했다.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의 소유권을 확보해야 함은 물론이다. 또 아이는 보충군이 되어 일정 기간 관청에서 복무해야 했다.


신분이 다른 부모 사이에서 아이가 출생하면 그처럼 제약이 많았기 때문에, 신분이 다른 사람끼리의 결혼은 사회적으로 권장되지 않았다. 이외에도 이런 혼인을 권장하지 않을 이유와 명분은 많았다. 그래서 부유한 양인 남성들은 노비 여성을 ‘처’보다는 ‘첩’으로 들이는 방식을 선호했다. 노비 여성과 양인 남성이 이런 식으로 만나는 것은 자연스레 인정됐다. 하지만 ‘춘향가’는 그런 통념을 무시했다. 춘향과 몽룡은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정식으로 혼인을 약속했다. 통념을 부정한 것이다. 조선시대 당시 길거리에서 ‘춘향가’ 공연을 듣던 양반 중에는 아마 이 대목에서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실룩이는 이들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을 계기로 사회 질서가 동요하자, 농촌을 벗어나 도시로 진출 혹은 도주하는 노비나 평민이 많았다. 조선왕조는 백성을 가능한 한 농토에 묶어두려 했다. 지배층이 대부분 농업지주였기 때문에 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백성들을 토지에 묶어둬야 했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백성들이 농토를 이탈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상업 등을 통해 도시에서 부를 축적하는 노비나 평민이 많아졌다. 이렇게 서민층의 경제적 처지가 개선된 데 반해, 이들의 정치적 위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재력과 신분의 불일치, 경제적 위상과 정치적 위상의 불일치가 심화됐던 것이다. 이로 인해 조선 후기에는 신분 상승에 대한 서민층의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팽배했다. 지배층인 양반과 대등해지려는 욕구가 충만해진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서민층 관객을 끌어들일 목적으로 ‘춘향전’ ‘춘향가’를 짓고 부른 이들은 춘향의 신분을 노비로 설정하고 양반 남성과의 결혼을 이야기에 집어넣었을 가능성이 있다. ‘춘향가’의 모티프로 추측되는 설화 속 백제 여성 한주는 부잣집 딸이었다. 즉 한주 이야기는 부잣집 딸과 왕족의 사랑 이야기다. ‘그랬을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가 조선 후기 들어 노비 여성과 양반 남성의 러브스토리로 바뀐 것은 신분 질서 혁파에 대한 서민층의 욕구가 그처럼 강렬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슷한 분위기가 효녀 이야기로 알려진 ‘심청가’에도 나타난다. ‘심청가’는 하층민인 심청을 황후로, 심 봉사를 부원군으로 격상시킨다. 신분 상승이 이 작품의 결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작품이 효를 주제로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신분 상승에도 높은 비중을 뒀다. 이러한 점은 소설 ‘심청전’ 끝부분에서도 드러난다. “어화, 세상 사람들아, 예와 지금이 다를쏘냐. 부귀영화 한다 하고 부디 사람 가볍게 보지 마소.” 결말에 이르러 신분 차별에 대한 저항심을 드러냈다는 것은 이 작품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드러내는 것이다. ‘심청가’에서는 효와 신분 상승을 뒤섞기라도 했지만, ‘춘향가’는 노골적으로 신분 상승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런 점에서 ‘춘향가’는 도전 정신이 제법 강한 작품으로 읽힌다.


방자의 등장이나 신분 상승 욕구 등을 통해 ‘춘향가’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당대의 사회 실정을 귀띔해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도 이 작품은 귀중한 유산이다. ‘춘향가’는 듣고 또 들어도, 더 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김종성 동아시아 역사 연구자. 월간 ‘말’의 동북아 전문기자로 활동했고 ‘오마이뉴스’에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 읽기’ 코너를 장기 연재하고 있다. ‘나는 세종이다’ ‘역사 추리 조선사’를 비롯해 다수의 책을 지었다.


그림 조성헌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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