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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호 Vol.350

사랑이여 안녕

프리뷰3-2┃국립창극단 '패왕별희'-패왕별희를 아시나요?

‘패왕별희’는 패왕 항우와 그의 아름다운 연인 우희의 절절한 이별 노래다.
경극으로 표현된 항우와 우희의 이별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가 알아야 할 진짜 경극 ‘패왕별희’ 이야기를 들어보자.

 

 

‘베이징 오페라’라 불리는 경극의 대표 작품인 ‘패왕별희’가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것은 아마 천카이거 감독의 동명 영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랫동안 초패왕 항우(項羽)와 연인 우희(虞姬)의 러브 스토리를 연기해온 주연 배우들의 애증과 인생 역정을 묘사한 이 영화는, 1993년 프랑스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고, 다음 해에는 미국에서 또다시 골든글러브 최우수외국영화상을 받았다. 항우와 우희의 족적대로 삶과 죽음의 길을 따라가는 주인공의 인생처럼, 경극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프이자 배경이다. 천카이거는 중국을 대표하는 5세대 영화감독답게 그 나름의 접근 방식으로 중국의 대표적인 전통공연예술인 경극과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경극의 대표작 ‘패왕별희’를 세계 문화 예술계에 널리 알렸다.


‘패왕별희(覇王別姬)’는 중국어로 패왕과 우희의 이별이란 의미다. 이 이야기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 중 ‘항우본기’에 처음 등장한다. ‘항우에게는 이름이 우(虞)인 미인이 있었는데, 총애하여 늘 데리고 다녔다’와 ‘여러 번 노래하니 우희도 따라 불렀다’라고 간략하게 기술돼 있는 것이 기록의 전부다. 패왕과 우희의 이별, 즉 ‘패왕별희’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고, 이들이 언제, 어떻게, 왜 이별을 했는지에 대한 서술도 없다. 이렇게 짧고 단순한 ‘사기’의 기록이 후대 사람들에게 무한한 상상의 공간을 제공했다. 이것은 결국 ‘우희의 자살’이라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패왕과 우희의 이별을 극대화하고 경극 ‘패왕별희’에 이르러 가장 완전하고 멋진 이야기로 탈바꿈된다. ‘사기’의 항우본기를 근간으로 ‘진말(秦末)’ ‘한초(漢初)’의 극적인 역사를 각색해 초패왕 항우와 그의 연인 우희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초楚나라 구 귀족의 후예로서 진(秦)의 폭정에 항거해 봉기한 항우는 천하의 통일을 눈앞에 둔 적도 있지만 유방의 군사(軍師)인 한신(韓信)의 명을 받고 거짓으로 투항한 이좌거(李左車)의 계략에 빠져 우희와 여러 장군의 간언을 물리치고 출병했다가 결국 복병에 의해 해하(垓下: 지금의 안후이성(安徽省))에서 포위되어 최후의 일전을 벌이게 된다.


당시 한신은 항우의 군대를 첩첩으로 포위하고는 상대방 군사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진중의 초나라 출신자들을 불러내어 밤마다 초나라의 노래를 부르게 한다. 그러자 한신의 계획대로 사방에서 들려오는 구슬픈 고향 노래를 듣게 된 초나라 군사들은 사기가 급격히 떨어졌고, 탈주병이 속출하게 된다. 여기서 바로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고사성어가 나온 것이다. 이에 천하를 호령하던 항우도 이 노래를 듣고는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하고 자신의 진영에서 마지막 연회를 벌인다. 그때 항우 곁에는 애첩 우희와 명마 추가 있었는데, 항우는 우희가 따라주는 술잔을 들고는 치밀어 오르는 감회와 비분을 노래로 읊었다.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개는 온 세상을 덮을 듯한데,
시운이 불리하여 오추마조차 달리지 않는구나.
오추마가 달리지 않으니 어찌해야겠는가?
우희야 우희야 이를 어찌한단 말이냐!

 

이 노래가 그 유명한 해하가다. 패왕 항우가 눈물로 절규하며 이 노래를 부르니 주위 사람들이 모두 숙연해졌고 항우와 함께 전장을 누비던 명마 추도 슬프게 울부짖는다. 왕은 말을 안으로 끌어들여 이별을 고했다. 말의 안전을 도모할 것이라는 그의 확고한 암시가 숨어 있었다. 이때 그의 연인 우희는 패왕의 기분을 돋우려고 애쓰며, 주군에게 술잔을 바치고 노래하며 춤을 춘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남몰래 훔치면서. 그때 군령이 들어와서 적이 사방을 에워싸고 공격한다고 아뢴다. 그리고 이 포위를 뚫고 나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패왕은 사랑하는 애첩 우희에게 다시 만날 길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것은 하늘이 그의 최후를 명했기 때문이리라. 우희는 굳센 어조로 싸움에서 지더라도 반드시 후일을 도모해야 하며, 애첩 따위를 염려해서 경솔한 행동은 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패왕은 유방에게 가서 목숨을 기탁할 것을 권고하지만, 여인은 잠시의 주저도 없이 반박한다. “폐하의 말씀은 옳지 않습니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고, 어진 여인은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습니다. 천하통일을 꿈꾼 황제께서 어찌 아녀자의 일까지 걱정하십니까? 폐하의 보검으로 그대 앞에서 자결해 성은에 보답하고 폐하의 근심도 덜길 원하옵니다.” 패왕은 이를 거절했지만, 우희는 결코 혼자 살아가지 않기로 마음을 굳히며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한나라의 군사들이 이미 포위하여,
사방에는 온통 초나라 노래 소리뿐이네.
대왕이 의기를 상실했는데
소첩만 어찌 홀로 살아남겠습니까!

 

우희는 항우가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린 틈을 노려 칼을 빼앗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우희가 자결한 후 패전을 거듭하며 쫓겨 다니던 항우 역시 오강烏江에 이르자 더는 어쩔 수 없음을 깨닫고 자결해 우희를 뒤따랐다. 여기까지가 경극 ‘패왕별희’의 내용이다. 비통함 속에서도 우직해 보이는 패왕의 장렬한 패전, 그리고 우희가 죽음으로 지킨 사랑이 주요한 메시지다. 천하무적의 영웅, 천군만마를 다스리는 맹장, 그리고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며 천하를 호령하던 패왕 항우의 좌절과 그와의 사랑을 죽음으로 지키고자 하는 우희의 절개에서 서사적 감상과 인간적 비장미를 느낄 수 있다. 비록 항우는 ‘하늘이 망하게’ 하는 실패한 영웅이지만 일세의 영웅이고, 우희는 그런 영웅의 애첩이다. 자신을 사랑한 영웅이 살아 있으면 살고, 영웅이 죽으면 같이 죽어야 한다. 우희는 영웅에게 걸림돌이 되어서도, 적의 포로가 되어 목숨을 구차하게 이어서도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영웅에 대한 사랑의 충정인 것이다.


국립극장에서 4월에 우싱궈 연출의 창극 ‘패왕별희’가 공연된다. 이 작품은 기존의 경극 ‘패왕별희’에는 없는 항우와 관련된 ‘사기’의 내용과 경극 ‘홍문연’의 내용을 더해 한층 새롭게 완성한 극본을 바탕으로 한다. 2천여 년 전 중국의 항우와 우희가 어떤 모습으로 재해석되어 무대에 등장할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더욱이 ‘패왕별희’가 경극이 아닌 창극으로 그것도 국립창극단에서 공연한다고 하니 그 감동이 어떨지 벌써 가슴이 설렌다.

 

차미경 숙명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부 교수이자 중국문화연구학회 회장이다. 중국 고전 희곡을 전공했고, 최근에는 주로 중국 공연예술과 문화 방면으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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