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5월호 Vol.3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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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의 국제 교류 역사는 1995년 창단과 함께 시작됐다. 아시아 민족음악과 동시대 현대 국악을 위해 달려온 지난 20여 년을 돌아보며, 세계가 공감하는 음악을 위한 새로운 지휘를 시작한다.
시카고 만국박람회의 조선 악기 전시(1893), 파리 만국박람회의 대한제국 악기 전시(1900)부터 국가 수립 이후 한국민속예술단의 파리 국제민속예술제(1960), 국립국악원 일본 공연(1964), 한국민속예술단의 멕시코 올림픽 파견(1968), 리틀엔젤스의 해외문화사절단 공연(1965~1976) 등 19세기 말 조선부터 1970년대까지 여러 형태의 국제 교류는 국가를 세계에 널리 홍보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한편 1960년대 초반 루 해리슨·알란 호바네스·황병기로부터 시작된 민간 국제 교류는 새롭게 구성된 국제 현대음악계와 국악이 관계를 맺는 시도였다. 1980년대 사물놀이의 국제적 성공은 현대화·무대화된 국악 공연이 글로벌 공연 시장인 월드뮤직으로 진입하고, 한인 디아스포라가 본국과 음악적 관계를 맺게 한 시대적 사건이었다. 1993년에는 한국·중국·일본 삼국의 전통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아시아가 결성됐는데, 이는 제국주의가 가져온 서구 중심의 지난 세기를 반성하고, 아시아 전통음악으로 아시아가 서로를 의식하며 연대를 시작한 첫 사건이었다. 숨 가쁘게 전개돼온 국악 해외 교류 백 년의 역사는 국내외 문화 지형의 변화를 배경으로 오늘날 국악을 구성하는 여러 단면과 등장인물을 교차시킨다.
‘국위 선양’ 넘어 성찰적 화두를 제시한 아시아 민족음악의 연대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아시아 전통음악 교류의 결과로 악기개량 논쟁의 한복판에 서기도 했으며, 오케스트라 아시아에 참여한 중국·일본 음악과의 협업은 상호 교류의 방식으로 확장됐고, 이에 참여한 연주자들을 진지한 아티스트로 성장시켰다. 교류의 대상도 몽골·대만·베트남·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 음악까지 확장했다. 이후에는 북한과 해외 한인 디아스포라의 음악까지 포용했는데, 2000년 북한 작곡가 최성환의 ‘아리랑’(1976)을 오케스트라 아시아의 연주로 처음 선보인 후 지속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겨레의 노래뎐’(2000~2009)과 관현악시리즈II ‘다시 만난 아리랑-엇갈린 운명, 새로운 시작’(2018) 관현악시리즈III ‘양방언과 국립국악관현악단-Into The Light’(2019)에서 재일在日과 연변의 지휘자·작곡가·연주자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을 매개로 남한 음악계와 교류를 시작해 성과를 이어갔다. 이렇듯 아시아를 넘어 남북, 디아스포라와의 음악 교류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중요한 정체성이자 역할이다.
글로벌 현대음악으로 발전 가능성 보여준 국악 관현악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현대음악의 조우는 2000년대 이후 특히 돋보이기 시작했는데, ‘네 줄기 강물이 바다로 흐르네’(2008) ‘파트 오브 네이처’(2011·2013) ‘리컴포즈’(2014) 관현악시리즈I ‘무위자연’(2016) ‘리컴포즈×상주작곡가’(2018)를 통해 김영동·나효신·박범훈·박영희·김대성·안현정·정일련·보두앵 드 제르·마이클 팀슨·다카다 미도리·치천 리·도널드 워맥·토머스 오즈번·임준희·강은구·김보현·니키 손·최지혜 등 국내 국악계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국악 관현악 곡을 발굴했고 국악 관현악을 감상하는 미학적 재미를 선사했다. 이러한 국제 교류 활동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행보를 국제적으로 주목받게 했으며, 현대 동시대 음악으로서 국악 관현악에 대한 재평가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IV ‘내셔널 & 인터내셔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