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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Vol.356

깊고도 넓은 신영희의 소리 길

VIEW 프리뷰 4┃국립극장 완창판소리 신영희의 흥부가-만정제

 

시원한 통성, 크고 시원시원한 발림, 즉흥적으로 판을 장악하는 뛰어난 능력. 소리의 깊이와 대중화를 동시에 추구해온 명창 신영희의 무대가 기대되는 이유다.


2019-2020 시즌 국립극장 ‘완창판소리’의 첫 무대는 신영희 명창의 만정제 ‘흥부가’로 연다. 신 명창은 판소리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분이다. 신 명창은 즉흥적으로 판을 장악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난데, 애초에 판소리가 대중과 호흡하며 펼쳐지는 예술인바, 그 점에서 판소리의 태생적 예술성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여성 명창이다. 소리판에 임하는 순간 청중을 파악하고, 청중의 수준에 맞게 판의 분위기를 쥐었다 놓았다 하는데, 원전을 창하면서도 중간중간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고 세련되게 전달한다. 또한 통성으로 시원하게 질러내어 소리의 깊이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준다. 발림 또한 크고 활달하며 시원시원해 청중에게 공연에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단순한 청중으로 객석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 신영희와 ‘함께’ 공연한다고 느끼게 만드는 게 신 명창의 장기다.
신 명창의 마지막 스승은 만정 김소희 선생이다. 만정은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를 단아하고 기품 있는 소리로 다듬어 우리에게 만정제로 남겨줬다. 특히 무대 위 단아한 자태가 돋보인 명창이었다. 평소 만정은 성음의 엄정함과 발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판소리는 노래와 극적 표현이 병존하기에 발림으로 빈 부분을 채워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소리를 하면서 덧붙이는 발림·동작·너름새·사채·춤 등은 소리와 함께하는 연기이므로 각각의 장면마다 이면에 맞는 동작을 해야 된다는 말씀이었다. 신 명창은 만정에게로 와서 그동안 배워온 판소리를 만정제와 견주어 정리하면서, 만정제 판소리 계승에 선두에서 힘쓰고 있다. 만정제 ‘춘향가’의 보유자로 그 소리를 지켜가고 있다.
신 명창의 예술 세계는 다양하면서도 깊이 있다. 오랜 기간 최고의 선생들에게 꾸준히 배워온 결과, 많은 장점을 확실히 소화하게 됐다. 선생의 음색은, 흔히 남자 소리라고 지칭되는, 통성과 수리성을 제대로 구사한다. 통성과 수리성은 판소리의 가장 깊은 특징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 특히 저음에서의 다양한 기교 구사에 능하며, 상성을 낼 때 온몸으로 이면을 그려내어 중앙성으로 멋있게 마무리하는 솜씨가 탁월하다. 소리가 배 속 깊은 곳에서 나와 울림이 강하기 때문에, 흔히 대통 속에서 나오는 성음을 지녔다고 말하기도 한다. 3천 명이 모인 강당에서 마이크도 없이 소리로 좌중을 압도했다는 전설 같은 기록도 있다.
‘흥부가’는 판소리 다섯 바탕 가운데서도 그 대중성을 가장 높게 쳐왔다. ‘흥부가’가 전통사회 우리 삶의 구체적인 여러 국면을 애원 처절하게, 거칠면서도 골계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흥부가’는 형제간의 우애 문제를 다루면서, 조선 후기 서민 사회의 궁핍한 정황을 살갑게 그려내는 예술 작품이다. 동생인 흥부가 가진 착한 성품과, 형인 놀부의 심술궂고 악착같은 기질을 대조해 보여주면서 우리의 흥미를 돋운다. ‘흥부 매품을 파는 대목’이나 ‘돈타령’ 등을 통해서 가난한 서민들이 고생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흥부는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준 대가로 박씨를 얻고, 그곳에서 돈과 쌀과 비단과 집이 나와 행복하게 살게 된다. 한편, 형인 놀부는 더 부자가 되고자 하는 탐욕으로, 일부러 제비 다리를 분질러서 종당에는 봉욕을 당하고 재물을 빼앗긴다. ‘흥부가’의 전체 정조는 비장하면서도 해학적이다. 흥부가 켜는 박통 속에서 밥과 옷과 집이 나온다는 것도 조선 후기 민중의 의식주衣食住에 대한 꿈을 환상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흥부가’의 연행은 목이 빼어나 장면을 잘 표현하면서, 아울러 서민적 삶의 국면을 발림으로 잘 드러낼 수 있는 명창이라야 가능하다. 완벽한 성음을 구사하지 않으면 그 맛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고, 표정 연기나 발림으로 극을 잘 이끌어야 비로소 살아 있는 ‘흥부가’가 된다. 그래서 ‘흥부가’ 연행은 걸출한 남자 명창에게 어울렸다. 이번에 신 명창이 완창하는 만정제 ‘흥부가’는 김소희 선생이 박녹주제를 근간으로 삼아, 사설을 다듬고 일부 장단을 새롭게 바꾸어 짠 것으로 두 시간 반 정도에 걸쳐서 연행된다. 만정제 ‘흥부가’는 박녹주 명창의 유파인 박송희 선생이나 한농선 선생의 바디와 다르다. 신 명창이 들려줄 대목 가운데서, 특히 남자 명창 성음으로 무겁게 내는 ‘떴다 보아라’ 대목과, 슬프게 애원성으로 내는 ‘두 손 합장’ ‘가난타령’ ‘박타는 대목’, 덜렁제로 부른 ‘제비몰러 나간다’ 등을 특히 꼼꼼하게 들어보자.
북 반주는 명고수 신규식 선생과 김청만 선생이 맡았다. 신규식 고수는 신 명창의 친동생으로, 오랜 시간 함께 호흡을 맞춰왔다. 김청만 고수는 우리 시대 제일의 명고라는 평판으로, 신 명창과 함께 무대를 꾸며온 분이다. 신 명창과는 같은 날 문화재로 지정된 인연이 있어, 이날 소리판의 분위기가 조화로울 것이라 기대한다.

 

유영대 고려대학교 교수.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을 지냈으며, 현재 무형문화재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신영희의 흥부가-만정제’
날짜 2019년 9월 21일
장소 국립극장 하늘극장
관람료 전석 2만 원
문의 국립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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