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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Vol.356

인간과 기계, 그리고 일하는 인간의 공존

두고두고 회자되는 공연 기록┃ 국립극단 제41회 공연국립극단 제59회 정기공연 ‘인조인간’

 

 


국립극단 제59회 정기공연 ‘인조인간’
인간과 기계, 그리고 일하는 인간의 공존
1970년 11월 11~15일

 

몇 해 전 치러진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국은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이를 계기로 알파고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보여주는 상징이자 4차 산업혁명으로 표현되는 미래 산업의 표본으로 여겨지게 됐다. 사실 인공지능과 이를 바탕으로 한 로봇 기술은 이미 여러 생활 영역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더욱 행복하게 하고 있을까? 인간의 노동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로봇이 상용화됐을 때 벌어지는 암울한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 있다. 1920년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가 발표한 희곡 ‘R.U.R.’이다. 차페크는 로봇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 작품에서 노동을 뜻하는 체코어 로보타Robota를 변형해 인간의 노동을 대신 하는 인조인간을 로봇이라 이름 지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로봇은 기계장치의 개념이 아니라 안드로이드와 같이 외모와 행동, 언어 구사 등 모든 면에서 인간과 닮은, 그러나 감정은 갖고 있지 않은 유기체로 묘사되고 있다. 작품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어느 외딴섬에 ‘러썸의 유니버설 로봇’이라는 회사의 생산 공장이 있다. 이 회사는 천재적인 과학자 러썸이 만들어낸 인조인간 제조 공식과 그의 아들이 만든 생산공정에 따라 로봇을 대량생산해 전 세계에 판매한다. 이곳에 인권연맹 소속인 헤레나가 로봇을 해방시키려는 목적을 숨긴 채 찾아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애초 하인과 노동자의 역할로만 사용되던 로봇은 분쟁 지역에서 점차 무장한 군인의 역할까지 수행하기에 이르고, 고민하던 헤레나는 로봇의 제작 비밀인 러썸의 친필 원고를 불태운다. 이후 제조 공정의 실수로 감정을 갖게 된 로봇들은 전 세계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인간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신생아가 태어나지 않는 상황에까지 이르며 멸망을 맞이한다. 로봇과 같이 직접 노동을 하던 알퀴스트는 유일하게 목숨을 건져 제작 공정의 비밀이 담긴 러썸의 원고를 복원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때 감정을 갖도록 실험 제작된 두 남녀 로봇이 등장해 사랑을 나누며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이 작품은 1921년에 프라하에서 초연됐고,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1923년에 이미 30개 언어로 번역됐다. 국내에는 춘원 이광수의 번역으로 처음 알려졌다. 이광수는 1923년 잡지 ‘동명’에 ‘인조인’이라는 제목으로 원작의 줄거리를 요약해 소개한 바 있다. 비록 작품 전체를 번역한 것은 아니었지만 식민지 상황에서도 동시대의 문화적 흐름을 적극 수용한 것이 의미 깊다. 이후 김기진·김우진·박영희 등 당대의 여러 문학인에 의해 지속적으로 소개됐는데, 원작의 희곡 형태대로 완역한 것은 박영희가 1925년 잡지 ‘개벽’을 통해 연재한 ‘인조노동자’를 꼽을 수 있다.
국내에서 연극으로 상연된 것은 국립극단의 제59회 공연이 처음이다. 앞선 번역본과 유사하게 ‘인조인간’으로 이름 붙은 이 공연은 국립극장이 현재 위치인 남산에 건립되기 이전인 1970년 11월에 명동 국립극장에서 선을 보였다. 작품의 번역은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의 신예 박항서가 맡았고, 연극계의 거장 이해랑이 연출을 담당했다. 이러한 신구 조화는 장민호·백성희·문정숙·최불암·손숙 등 배역 전반의 구성에서도 엿볼 수 있다. 명동 시절의 국립극단은 창작극 외에도 다양한 번역극을 꾸준히 무대에 올렸는데 이 가운데 ‘인조인간’은 마지막 번역극이 됐다. 특히 1966년 이후로 창작극 위주의 공연을 이어온 당시 국립극단으로서는 작품의 성격이나 내용 면에서 매우 실험적인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R.U.R.’은 인간이 자신을 닮은 대상을 창조하는 행위 즉, 신의 영역에 도전했을 때 벌어지는 부정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여기서 로봇은 인간 대신 노동을 할 뿐 사실 인간과 다른 점은 없다. 오히려 인간이 생식기능을 잃고 로봇이 번식하게 되며 인간과 로봇은 더욱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진다. 결국 차페크는 인간과 기계의 공존보다는 인간과 인간의 공존을 이야기하고자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을 분석하는 주요 담론은 ‘기술 발전의 윤리 문제’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 정도로 요약된다. 분명한 것은 이 논의들이 모두 차페크가 현실 세계를 탁월하게 투영해낸 부분에 주목한다는 사실이다. 극 중 배경인 로봇 공장에서는 통신수단으로 전보를 사용하고 있다. 2019년 현재 아직 인간의 노동력을 완벽히 대체할 로봇은 발명되지 않았지만 전보가 더는 사용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상상력의 산물은 때로는 실제와 너무나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러나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 또한 기술 발전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같이 이 작품에서 그려내는 사회의 모습은 현재와 매우 닮아 있다. 이 때문에 도민과 헤레나의 대사를 곱씹어보게 된다.

 

 

도민 실리적인 면에서 어떤 노동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헤레나 정직하고 열심히 일하는.

도민 아닙니다. 최염가의 노동자들 말이죠. 요구가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젊은 러썸 씨는 요구조건이 없는 노동자를 발명했지요.

 

국립극단 제59회 공연 대본 ‘인조인간’(박항서 역), p.19.

 

 민덕홍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학예연구사

 

국립극단 제59회 정기공연 ‘인조인간’
일자 1970년 11월 11~15일 | 장소 국립극장(명동)
극작 카렐 차페크Karel apek | 번역 박항서
연출 이해랑 | 조연출 민동원 | 미술 장종선
출연 최불암·문정숙·이의일·손숙·이신재·이치우 외

 

 

공연예술자료 이용안내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은 약 21만 점의 공연예술 자료를 보존하고 있다. 공연예술 디지털아카이브 홈페이지(archive.ntok.go.kr)에서 누구나 쉽게 자료 검색 및 열람이 가능하며 박물관을 직접 방문하면 더 많은 자료를 이용할 수 있다.
문의 공연예술자료실(방문 이용) 02-2280-5834 공연예술디지털아카이브(온라인 이용) 02-2280-5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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