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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호 Vol.358

국립국악관현악단 여미순

VIEW┃예술가의 초상

 
‘국악 관현악단 최초의 여성 악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던 아쟁 연주자 여미순이 지난 7월 다시 악장에 임명됐다. 역사적인 타이틀에 걸맞게 그녀는 ‘악장’으로서의 책임을 이야기할 때 더 뜨거워 보였다.

 



“아쟁이 사실 좀 비주류 악기 아닌가요.” 무심코 던진 물음에 낯빛이 살짝 바뀌었다. “비주류라고 생각 안 해봤다. 연주자 입장에서는 리더 격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단호히 말하는 여미순 악장의 표정에서 아쟁에 대한 강한 사랑과 긍지가 느껴졌다.
“아쟁은 정말 좋은 악기예요. 현악기 중 음역이 가장 낮은 악기라 서양 관현악의 콘트라베이스 같은 역할을 해요. 쓰임이 많은 악기죠. 요즘엔 솔로 창작곡도 많이 나와서 영역이 많이 넓어졌고, 리더 격으로 더 다양한 음악을 구사하고 있어요.”
아쟁은 국악 현악기 중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악기다. 대아쟁과 소아쟁, 산조아쟁까지 종류도 여럿이다 보니 여성 연주자로서 운반 자체가 힘에 부친 적도 많았다.
“악기니까 조심히 들고 다녀야 해서 그 무게가 오롯이 어깨에 부담이 되죠. 옛날엔 연습실에서 공연장까지 옮기다 보면 어깨가 아파 곧바로 연주할 수가 없었어요. 연주하는 게 좋아서 힘든 걸 잊어버렸다가도 운반할 때는 화가 나고 그랬어요.(웃음) 이젠 악단 내 악기계라는 직책도 생기고 운영 시스템이 잘 갖춰져서, 본연의 연주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아쟁은 연주도 쉽지 않은 악기다. 어린 시절 언니가 무용을 한 인연으로 우연히 듣게 된 무용음악에서 아쟁의 매력에 빠져들어 겁 없이 시작하게 됐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기는 쉬워도 그 이상의 경지에 도달하기가 정말 어려운 악기가 아쟁”이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저는 아쟁을 정말 사랑해요. 언니 때문에 산조아쟁이 편성된 민속음악을 듣게 됐는데, 유독 아쟁 소리가 제 귀에 쏙쏙 들어오더군요. 하면 할수록 어려우면서도 끌리게 된 건 사람의 마음에 훅 들어오는 소리라서 그런 것 같아요. 슬픔이나 애잔함 같은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감정을 강렬하게 끌어내는 음색이거든요. 자신을 만족시키는 연주를 해야 한다는 열망에 힘도 들지만 그럼에도 그 경지에 도달하려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데, 죽을 때까지 되려나 모르겠네요.(웃음)”
그의 언니는 현재 전북도립국악원 무용단장인 한국무용가 여미도다. 언니와 오랫동안 한 직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언니가 고향인 목포에서 유명 스타였어요. 그 영향으로 저도 국악기를 전공하게 됐고, 어찌어찌 국립극장에까지 같이 들어오게 된 거죠. 국립무용단과 국립국악관현악단 사이에 복도 하나뿐인데도 서로 바쁘다 보니 막상 자주 마주치진 못했어요. 그런데 언니가 퇴직하고 나니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더군요. 서로 활동을 도와주고, 조언도 주고받을 수 있으니 제게는 든든한 버팀목이죠.”

 

 

 

 

그녀는 ‘타고난 악장’ 스타일
국립국악관현악단은 11월 2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관현악시리즈Ⅱ ‘격格, 한국의 멋’ 공연을 앞두고 있다. 그간 국립국악관현악단이 국내외 유명 작곡가들에게 위촉해 연주한 레퍼토리 중에서 한국의 멋과 격을 느낄 수 있는 곡들을 엄선해 다시 선보이는 공연이다. 10월 말엔 ‘3분 관현악’이라는 흥미로운 시도도 있었다. 평균 연령 33세의 젊은 작곡가 10명에게 각각 3분짜리 곡을 위촉해 각기 다른 개성의 곡들을 한 무대에서 엮어내는 독특한 음악회였다.
“올해 부임하신 김성진 예술감독님이 국악 창작곡에 열정이 있으세요. 유명 작곡가보다는 자기 색깔을 찾아나가는 젊은 작곡가들에게 각자 딱 한 가지 색깔만 강하게 보여주라는 뜻인 것 같아요. 국립이라는 큰 단체가 젊은 작곡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의미도 있죠. 이런 작업을 우리 단체가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에겐 국립국악관현악단이 국악 관현악의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간다는 의식이 분명하거든요. 우리가 새로운 걸 제시하고 다른 단체에도 좋은 영향을 주면서 발전의 계기가 됐으면 해요.”
지난 7월 악장 직책을 맡아 이제 100일을 넘겼다는 그녀는 ‘타고난 악장’ 스타일이었다. 열정적이면서도 친화력 ‘갑’인 푸근한 대화 스타일이 매력적이었다. 알고 보니 황병기 예술감독 시절 ‘국악 관현악단 최초의 여성 악장’이라는 역사적인 타이틀을 얻었던 게 그다. 세월이 흘러 두 번째로 악장을 맡은 만큼, 단체를 위해 처음보다 더 잘해내겠다는 의욕에 불타고 있었다.
“국립국악관현악단만의 특징이라면 연주력이나 집중력도 상당하지만 단원들의 열정이 정말 대단해요. 저부터도 ‘이 정도면 된다’는 생각은 안 하거든요. 안주하지 않고 더 잘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3분 관현악’을 비롯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 늘 새로운 콘셉트를 찾아야 하고, 끊임없는 자기 계발도 해야 하죠. 그러려면 단원과 예술감독, 기획자의 마음이 잘 모여야 하는데, 그런 소통을 책임져야 하는 게 악장의 소임이겠죠. 이번에 악장 되고 나서 제가 처음 한 말이 ‘모두가 행복한 음악을 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단원들과 예술감독이 50씩 행복해서 100을 만들어야지, 서로 나만 따라오라면서 혼자 100만큼 행복하려고 하면, 행복하지 않은 쪽이 생기잖아요.”
20여 년간 국립국악관현악단에 재직하면서 여러 예술감독을 거쳤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역사적인 타이틀을 붙여준 황병기 명인을 ‘인생의 큰 스승’으로 꼽았다. 그가 재임하던 6년이 자신의 음악 인생을 크게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그전에는 ‘국악계 큰 어른’ 정도로 생각했는데, 제 인생에 큰 스승이 되셨어요. 역대 예술감독 중 연세는 가장 많으셨지만 소통하기 위해 정말 노력하신 분이죠. 예술인들이 낯가림이 심해서 처음엔 어색했지만, 나중엔 너무나 사랑하게 됐습니다. 객관적이고 겸손하신 인품을 떠나 기획하신 공연도 돌이켜보면 젊은 사람보다도 앞서가는 작업을 많이 하셨어요. 아직도 여전히 그립고 뵙고 싶네요.”
황 명인 이야기가 나오니 한결 말이 많아진다. 그와의 에피소드를 온종일 얘기하라고 해도 끝이 없을 거라면서도, 딱 하나만 들려달라고 하니 곤란한 표정이다. 너무 많아 고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장 존경스러운 건 유연함이에요. 항상 어떤 결정을 하실 때 깊이 숙고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시지만, 일단 결정하면 바꾸지 않으시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제가 고민을 털어놓으니 들어보시고 결정을 바꿔주셨어요. 신중히 내리신 큰 결정을 고집하는 게 보통인데, 기대 안 하고 있다가 오히려 제가 깜짝 놀랐죠.”
요즘도 극장 여기저기에서 황 명인과의 추억에 젖을 정도로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깊다. 경비원 아저씨나 식당 아주머니까지, 극장 식구 모두의 사랑을 받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누구와도 격의 없이 지내시고, 초등학생이 인사를 해도 90도로 받아주시던 분이죠. 저도 그걸 배워서 90도로 인사합니다. 제 인생을 살아가는 데 그만큼 영향을 주신 거예요. 저를 악장으로 선임하시고는 ‘국악관현악단 최초의 여성 악장’이라면서 어디를 가나 저를 자랑하시던 것도 감사하죠. 그만두실 때도 잊을 수 없어요. 헤어지면서 감사 인사를 드렸더니 ‘내가 여미순 때문에 잘 있다 가는 거지’라고 하시는데, 그 말 한마디에 악장으로서 힘들었던 게 다 없어졌죠.”
황 명인에 대한 존경도 크지만, 김성진 신임 예술감독에 대한 기대도 만만치 않단다. 그도 단원들과 소통하는 데 열정적이라는 것이다.
“단원들의 휴식 공간이 마침 예술감독실 바로 앞인데, 항상 문을 활짝 열어두고 단원들을 초대하시죠. 단원들은 아무래도 불편하니까 자꾸 문을 닫아요. 그러면 감독님이 다시 열고, 단원들이 또 닫고, 감독님이 또 열고(웃음). 그만큼 소통에 신경을 쓰시는 거죠. 처음엔 단원들도 뻘쭘해하다가 요즘은 들어가 커피도 마시고 그래요.”
악장으로서도 한창 뜨거워져 있지만, 연주자로서의 개인 활동에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오래 활동해온 정악 실내악단 ‘아음회’에서 곧 새로운 콘셉트의 음반을 발매할 예정이다. 정악 위주로 ‘아정한 음악’을 하는 콘셉트이지만, 늘 똑같은 정악이 아니라 ‘이 시대에 맞는 정악 스타일’을 추구한 결과다.
“최근 몇 년 동안 정악도 시대에 맞게 변화시켜보자는 의논을 해왔거든요. 단선율인 ‘영산회상’을 작곡가에게 편곡 의뢰해서 화음을 넣는 시도를 하게 됐죠. 얼마 전 ‘영산회상’의 모든 곡을 편곡해 음반을 녹음했는데, 조만간 발매될 겁니다. 전통음악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창작음악 하는 사람들은 자꾸 변화를 모색해야 해요. 좋다 나쁘다 평가도 나오겠지만, 다양한 시도를 해서 연주자가 결과를 느껴보는 게 중요해요. 일단 실행해봐야 계속할지 말지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리더들이 그런 고민을 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하죠. 단원들은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많아도 선뜻 자발적으로 나서기는 어려우니, 리더들이 변화를 끌고 가야죠. 변화 없이는 발전도 없으니까요.”
개인 활동 얘기를 하다가도 어느새 악장 포지션으로 돌아와 있다. 딱 ‘천생 리더’였다.


유주현 ‘중앙SUNDAY’공연 담당 기자.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사진 공간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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