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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1월호 Vol.360

변칙의 발전사에서 존재한 하나의 격

되새기기 하나 |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Ⅱ ‘격格, 한국의 멋’

다섯 곡이 모두 지나고 나니, 켜켜이 쌓인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역사를 훑은 듯해 마음이 꽤 벅찼다. 선별된 곡들은 악단이 얼마나 일관되게,
그러면서도 변칙적으로 성장해 왔는지 말해 주고 있었다.

 

 

2019년 4월, 국립국악관현악단 김성진 신임 예술감독이 부임했다. 그는 국내에서 작곡을, 미국에서 지휘를 공부한 이력을 지녔다. 그런 그가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에 새로이 임명됐을 때, 많은 이들은 국악과 양악을 모두 능숙하게 다룬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런데 지켜보니 김성진 예술감독의 강점은 따로 있는 듯하다. 그는 ‘소통왕’이다. 부임 후에는 제일 먼저 단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조직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격格, 한국의 멋’은 ‘소통왕 김성진’의 혜안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
우선 지난 10월, 관현악시리즈의 첫 막을 연 ‘3분 관현악’을 짧게 언급하고자 한다. 김성진은 신임 예술감독으로 임명됐을 때 ‘젊은 작곡가’와 ‘젊은 지휘자’를 발굴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그 일환이던 ‘3분 관현악’에서는 젊은 작곡가들과의 밀접한 스킨십이 돋보였다. 개화라는 과제에서 젊은 음악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김성진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급진적 자세가 인상 깊었다.
다음 관현악시리즈로 ‘격格, 한국의 멋’을 배치한 건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동안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주력해 온 창작음악을 중심으로 악단의 정체성이 담긴 대표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공연이었다. 진보적인 실험에만 몰두하다 보면 중심을 잃기 마련이다. ‘격格, 한국의 멋’은 실험의 과정에서 잠시 숨 고르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기성 작곡가들이 국악 관현악 창작에서 무엇을 염두에 뒀는지 짐작하게 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1995년 창단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창작음악을 위한 분명한 지향을 보여왔다. 초대 단장 박범훈부터 현재 김성진 예술감독까지 총 일곱 명의 예술감독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국립국악관현악단을 위해 부단히 애써 왔다.  그간 국악기를 다양하게 개량했고, 국악 관현악단에 적합한 악기 편성을 고민했으며, 서양 악기와의 협연을 모색했다. 이는 모두 국악 관현악 사운드를 안정화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격格, 한국의 멋’은 그동안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연주해 온 주옥같은 창작 레퍼토리 중 ‘한국의 정신과 악단의 정체성을 담은 명곡’을 선정해 무대에 올렸다.

재밌는 점은 선곡 과정이다. ‘국악 관현악의 명곡’이라고 칭하려면 명확한 선정 과정과 이유가 필요할 것이다. 음악이란 감상하는 이의 마음에 따라 교묘히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니까. ‘왜 이 곡이 오늘날의 국악 관현악을 대표하는지’에 관한 명백한 이유를 제시해야 관객도 열린 마음으로 감상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김성진 예술감독은 단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2단계의 선곡 과정을 거쳤다. 1차로 단원들이 수많은 관현악곡 중 20여 곡을 추렸고, 이후 김성진 감독과 선곡 자문위원(김재영·이지영)이 치열한 토론을 통해 최종 다섯 곡을 선정했다. 프로그램 북에는 국립국악관현악단 운영 자문위원 다섯 명의 곡마다 추천사를 꼼꼼히 적어놓아 곡에 관한 신뢰도를 높였다.


김성진의 말에 따르면, 1차로 곡을 추릴 때 단원마다 선호하는 곡이 매우 달랐다고 한다. 누구는 전통 국악을 느낄 수 있는 곡을, 누구는 현대적인 창작곡을 ‘베스트’로 꼽았다고. 국악 관현악의 양식적 실험이 거듭될수록 누구보다 단원들이 가장 중심을 잡기가 힘들었을 터. 그런데 오묘하게도 선정된 다섯 곡에서 하나의 결이 느껴졌다.

 

 


켜켜이 쌓인 악단의 역사를 훑다
강준일·김성국·김대성·양방언·임준희. 다섯 작곡가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강준일부터 임준희까지, 한 세대를 거치며 국악 관현악이 어떠한 성장을 이뤘는지 그 과정을 느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구성됐다. 첫 순서는 국악 관현악을 위한 관현악 소묘 ‘내 나라, 금수강산..’. 이 곡은 2015년 별세한 강준일의 유작으로, 2014년 3월 국립국악관현악단 ‘작곡가 시리즈3’에 위촉 초연됐다. 강준일은 한국 창작음악에 새로운 지평을 연 작곡가다. 물리학과 출신 강준일의 작품은 음악의 성질과 법칙에 관한 치밀한 접근이 돋보인다. 작곡가 말년의 유작이 된 ‘내 나라, 금수강산..’에서는 음향적 분배를 고려한 편성이 도드라졌다. 창작음악 발전사에서 악기 편성으로 인한 음향적 실험이 얼마나 지난한 과제였는지, 그 속에서 강준일이 얼마나 집요하게 고민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김성국의 국악 관현악 ‘공무도하가’가 이어졌다. 2012년 국립국악관현악단 ‘新, 들림’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각 국악기가 지닌 특유의 음색을 재치 있게 활용했다. 고대가요 ‘공무도하가’를 소재로 한 곡이며, 전반적으로 서정성이 물씬 배어난다. 도입부에서 물의 이미지가 점차 확장되며 후반부에는 다이내믹한 분위기가 극대화된다. 가야금이 만드는 물의 소리 위에 다양한 악기 음색이 점층적으로 쌓이며 마침내 하나의 드라마를 완성했다. 특히 연주자들의 목소리가 악기 소리를 파고들며 흔들리는 감정을 더욱 고조시켰다. 각 악기가 지닌 처연한 색채감을 능란히 활용한 작품이었다. 국악 관현악에 속한 악기 하나하나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명확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숙원은 국악기 음역의 확장이었다. 옹골진 국악 관현악 사운드를 위해서 국악기 개량은 필수였고, 차근차근 악기를 개선해 나가고 주법을 발전시켜 현재에 이르렀다. 김대성의 대금 협주곡 ‘풀꽃’은 대금의 화려함을 마주하게 했다. 2005년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초연된 이 곡은 아프리카와 한국의 민속 장단을 결합한 작품이다. 작곡가 김대성은 이번 공연을 위해 14년 만에 작품을 개작했다고 한다. 큰 변화는 후반부를 확대하고 전체 선율을 다듬은 것. 연주를 빛낸 건 단연 대금 협연자 김정승이다. 그는 그간 현대음악 연주 기법을 고안하며 전통악기를 위한 현대음악의 지평을 넓히는 데 일조해왔다. 해방을 향한 이라크인들의 격동적인 몸짓이 대금의 역동적인 선율을 통해 눈앞에 어른거리는 듯했다.
후반부의 두 곡은 국악 관현악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작품이다. 2019년 3월 ‘양방언과 국립국악관현악단-Into The Light’에서 초연한 양방언의 ‘아리랑 로드-디아스포라’는 7악장 구성의 ‘국악 관현악 교향곡’이다. 전체 악장을 다 연주하면 40여 분이 소요되기에, 이번 공연에서는 1·2·3·5·7악장만 선보였다. 악장마다 완결성이 강해 단독으로 연주해도 고려인의 삶이 담긴 전체의 얼개를 읽어낼 수 있었다. 반면 임준희 국악 칸타타 ‘어부사시사’는 ‘칸타타’를 표방한다. 이번 공연에선 서곡과 춘사·하사·추사·동사 이렇게 사계절의 한 대목씩을 발췌해 올렸다. 정가 김나리, 바리톤 임병욱과 스칼라오페라중창단이 함께해 웅장한 합창의 울림을 선사했다. 
이번 공연에서 선보인 다섯 곡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국악 관현악의 전통과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연결되는 하나의 결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각 작곡가가 추구하는 창작 방식에서 일련의 사유 패턴이 감지된 것이다. 전통 소재를 활용해 한국의 미를 끌어내려는 움직임이 모든 곡에서 느껴졌다. 더불어 음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심도 묻어나왔다. 한국의 금수강산이나 고대가요, 윤선도의 시 등 이들이 활용한 소재는 음악에 한국적 정서를 부여하는 좋은 수단이 됐다. 더불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의 삶을 아리랑에 녹인 양방언의 교향곡이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울분이 느껴지는 김대성의 협주곡은 창작음악의 사회적 역할을 짚어보도록 했다.
다섯 곡이 모두 지나고 나니, 켜켜이 쌓인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역사를 훑은 듯해 마음이 꽤 벅찼다. 선별된 곡들은 악단이 얼마나 일관되게, 그러면서도 변칙적으로 성장해 왔는지 말해 주고 있었다. 온건과 급진의 기로에서 김성진 예술감독의 방향 감각은 유다르다. 김성진이라는 새로운 선장을 만난 국립국악관현악단. 순풍에 돛 단 듯 순항하고 있다.

 

장혜선 월간 ‘객석’에서 음악과 연극 담당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바른 시선으로 무대를 영원히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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