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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8월호 Vol.367

평화와 위로 사이

다시보기 하나 |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IV ‘2020 겨레의 노래뎐’

지금 우리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곡. 지난 6월 25일, 랜선을 타고 흐른 겨레의 노래가 위로와 희망을 가만가만 이야기했다

‘일상의 평화’는 한동안 우리 생활과 동떨어진 말이 됐다.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에 바이러스가 침투했다. 각 국가에선 국민을 대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선포했고, 자연스럽게 비대면 활동이 일어났다. 공연예술계 역시 마찬가지. 공연 대부분이 온라인 중계로 대체되는 상황이다. 
롯데콘서트홀에서 관객을 만날 예정이던 관현악시리즈IV ‘2020 겨레의 노래뎐’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수도권 코로나19 집단 발생 대응 방안 연장 조치에 따라 무관중으로 영상 촬영만 진행됐다. 최근에야 ‘일상의 평화’라는 단어가 절실하게 다가온다. 

현장성보다는 확장성에
첫 시작은 20년 전. ‘겨레의 노래뎐’은 2000년 국립극장 창설 50주년을 기념하며 처음 진행됐다. 이후 2009년까지 10회 개최되며 국립국악관현악단 대표 브랜드 공연으로 자리매김했다. ‘겨레의 노래뎐’이란 이름처럼 우리 민족 공동심公同心의 근원이 되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겨레의 노래’를 찾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동안 이 공연을 통해 광복 직후 창작 가요를 비롯해 국내에 발표되지 않은 북한 민족음악 등을 발굴해 연주해 왔다. 
올해는 우리 민족에게 상처를 남긴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고, 더불어 국립극장 창설 70주년이기도 하다. 이에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민족의 역사가 담긴 곡 여섯 편을 준비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는 감사를, 전쟁 때문에 고향을 잃은 이들에게는 위로를, 남북의 미래를 만들어갈 이들에게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곡들이다.
공연은 6월 17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무관중으로 녹화가 진행됐다. 몇몇 취재진과 제작진만 현장을 관람했는데, 녹화 때문에 손뼉을 칠 수가 없어 객석에는 쓸쓸한 적막감이 덮쳤다. 김성진 예술감독은 덤덤한 표정으로 지휘자석에 올랐다.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에 걸맞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공연이 진행됐다.
이후 6월 25일, 6.25전쟁 70주년을 기리며 공연 실황은 국립극장 네이버TV와 국립국악관현악단·문화체육관광부·해외문화홍보원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상영됐다. 국립극장에서는 초중고교 학생들도 국악관현악을 통해 ‘전쟁과 평화’의 뜻을 되새길 수 있도록 학교 일과시간인 오후 1시 30분에 온라인 상영을 진행했다.
코로나19 이후 다양한 형태의 비대면 공연이 모색되고 있다. 음악의 경우는 현장성이 강해 영상화에 대해선 꽤 회의적이었는데, 이번 ‘2020 겨레의 노래뎐’이야말로 영상화에 적합한 콘텐츠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북은 물론 남한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서로가 서로를 마주하기 어려운 시국이 아닌가. 이번 ‘2020 겨레의 노래뎐’은 시기에 맞춰 현장성보다는 확장성에 방점을 찍고 진행됐다. 우리 악기는 물론 6.25전쟁도 낯설게 느끼는 다음 세대에게 이 공연이 작은 자극이 되기를, 거리를 둔 세상에서 작은 희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연을 봤다.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


전쟁 후 남겨진 것들
21세기에 국악관현악이 지향할 점을 생각해 본다. 혹자의 표현처럼 ‘새로운 음향체’를 개발해야 하는 과제가 있을 수 있고, ‘우리의 소리로 현재를 기록한다’는 시대적 사명을 다해야 할 수도 있다. 이번 공연에선 작곡가 손다혜·장석진·양승환이 위촉 곡을 위해 창작의 고통을 감내했다. 그들의 곡에는 어떠한 음향체로 우리의 오늘을 기록해야 하는지 고민한 흔적이 묻어 나왔다.
손다혜가 작곡한 ‘하나의 노래, 애국가’로 공연이 시작됐다. 손다혜는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여성 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가 ‘임시정부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하나의 노래, 애국가’는 역사 속 애국가 세 곡을 엮어 의미가 깊다. 서곡 ‘역사를 여는 서막’은 대아쟁의 구슬픈 선율로 시작돼 다른 악기들이 화음을 점층적으로 쌓았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참여 주체가 들불처럼 확장된 독립운동을 떠올리게 했다. 이어서 최초의 국가로 기록된 ‘대한제국 애국가’는 대중에겐 낯설다는 걸 인지해 다소 편안한 선율로 풀어냈다.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의 선율을 차용한 ‘임시정부 애국가’와 현재 ‘애국가’까지 곡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됐다. 곡에선 세마치장단이 도드라졌는데, 이는 ‘대한제국 애국가’와 ‘임시정부 애국가’를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후반부 악기들은 동일한 선율을 연주하며 하나의 의지를 표현했다.
손다혜의 곡에선 결연한 의지가 드러났다면, 작곡가 장석진의 곡은 전쟁 속에도 반드시 피워야 할 평화의 꽃을 이야기했다. 이번 공연을 위해 위촉된 ‘초토焦土의 꽃’에는 격렬한 혼돈의 끝에 존재하는 조용한 슬픔이 담겼다. 곡에선 특히 타악기의 역할이 빛을 발했다. 국악과 양악의 타악기가 짝을 이뤘고, 서로 경쟁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장석진은 6.25전쟁을 통해 서양 문화가 한국에 급속히 퍼진 상황을 떠올렸다고 한다. 타지에서 들어온 이질적인 것들이, 점차 우리 문화와 조화를 이루는 과정을 선명히 담았다. 또한 동일한 박자 속에서도 음악적 변화가 느껴졌는데, 이는 인류의 역사가 일정한 틀에 담긴 것을 뜻하는 듯했다.
또 하나의 초연곡인 양승환의 ‘작은 평화’도 6.25전쟁 이후 남겨진 것들을 다뤘다. 양승환은 전란 속 민중의 모습을 담은 노래들을 주제 선율로 삼아 국악관현악으로 재구성했다. 먼저 윤이상의 ‘나그네’(1948)가 가야금 선율로 나오고, 장일남의 ‘기다리는 마음’(1951), 윤용하의 ‘보리밭’(1952), 박시춘의 ‘굳세어라 금순아’(1953)가 이어졌다. 이 곡들 모두 소중한 이를 상실한 슬픔을 담은 노래. 전쟁 후 많은 시간이 흘러 표면적으론 평화가 찾아왔지만, 그 안엔 슬픔이 머물러 있다. 

현대무용가 안은미


북한 음악의 재발견 그리고 위로
두 명의 협연자도 주목할 만했다. 북한 작곡가 리종오의 ‘휘파람’(편곡 김상욱) 연주에는 소리꾼 정은혜와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함께했다. ‘휘파람’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북한의 통속가요로, 1980년대 말 보천보전자악단의 작곡가로 활동한 리종오가 곡을 만들었다. 안은미 역시 북한춤에 관해 꾸준히 관심을 보여왔다. 2018년 선보인 ‘안은미의 북.한.춤’에서 주체사상 영향으로 군무 위주로 발달한 북한 무용의 움직임을 모티프 삼아 자신만의 해석으로 재현한 바 있다. 이번 무대에서 그는 보랏빛의 강렬한 드레스와 높은 구두, 화려한 왕관을 쓰고 등장했다. 성에 살고 있는 여왕을 떠올리게 하는 외형의 그는 아슬아슬한 몸짓으로 무대 위를 활보했다. 환하게 웃으며 ‘휘파람’을 능청스럽게 립싱크했지만, 동작은 어딘가 어색하고도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본능에 따른 자연스러움이 아닌, 훈련된 춤에 가까운 북한의 움직임을 담고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는 북한 작곡가 리한우의 바이올린 협주곡 ‘옹헤야’(편곡 최지혜)를 선보였다. 원곡의 작곡가인 리한우는 1943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지만 1960년 북한으로 귀국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윤이상의 제자로도 알려져 있으며, 민족음악 기법을 지키면서도 실험적으로 서양의 현대음악 양식을 접목한 것으로 유명하다. 리한우가 2004년에 서양 관현악을 위해 작곡한 ‘옹헤야’는 역동적이고 경쾌한 선율이 특징이다. 협연자 대니 구는 작곡가 리한우와 비슷한 이력을 지녔다. 그는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필라델피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북미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에서 앙상블 디토 멤버로 합류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남북 상황을 피부로 느낄 수 없는 먼 곳에서 성장했지만, 버릴 수 없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녔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신묘한 가락이 특징인 노동요 ‘옹헤야’의 음악적 특징을 정확히 재현해 시선을 끌었다. 
신명 나는 곡이 연달아 지나가고, 마지막은 황호준의 새야새야 주제에 의한 ‘바르도bardo’가 장식했다. 이 곡은 2016년 ‘베스트 컬렉션-민요’에서 위촉 초연된 후 국내 여러 국악관현악단에서 꾸준히 연주되고 있다. 지난해 제38회 2019 대한민국작곡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곡명의 ‘바르도’는 죽음과 환생 사이의 상태를 일컫는 티베트 불교 용어다. 죽음을 통과하는 영혼의 상태부터, 천도되는 편안함까지 장엄하게 표현한다. 국악관현악에서 사용되는 개별 악기들의 음색을 하나씩 들을 수 있다. 이 곡은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에게 이승에서 짊어진 무거운 짐들을 모두 내려놓으라는, 작은 위로를 건네는 듯했다. 
전쟁 후 70년이 흘렀다. 소소한 평화가 지속될 줄 알았건만, 2020년은 일상의 평화가 절실한 시대가 됐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2020 겨레의 노래뎐’은 음악이 전하는 평화의 방식을 여러모로 고민케 했다.

장혜선 월간 ‘객석’에서 음악과 연극 담당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바른 시선으로 무대를 영원히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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