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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호 Vol.370

새로움을 과감히 껴안은 국악관현악, 그 압축적 역사

미리보기 넷 ① |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Ⅰ ‘2020 마스터피스 : 정치용’

 

국악관현악이 얼마나 과감히 융합해 왔는지, 창작사의 절정을 만나본다


대학 학부에서 화학을, 대학원에서 작곡을 전공한 김택수의 음악은 늘 명확하다. 그의 작곡 동기는 분명하고 구체적이다. 2015년 초연된 작품인 ‘문묘제례악에 의한 국악관현악-아카데믹 리추얼, 오르고 또 오르면’도 그렇다. 그는 이 작품이 자신의 첫 국악관현악 작곡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왜 하필 문묘제례악에 매혹됐는지 소상히 설명한다. 


“문묘제례악은 지금 말로 하면 ‘개학식 음악’ 또는 ‘조회 음악’이다. 과거의 훌륭한 학자들에게 드리는, 학문에 정진하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 그리고 그를 위한 제례음악이라니, 얼마나 흥미로운가!” 


작곡가를 매혹한 점은 이뿐 아니다. 문묘제례악이 중국에서 들어왔으나 조선에만 남았다는 점, 거대한 음악이 단순한 구조로 돼 있다는 점에도 그는 열광했다. 작곡가의 문묘제례악 탐험은 결국 ‘소리’에 가서 닿는다. 단순한 음으로 구성된 문묘제례악의 선율에서 모든 음의 끝이 살짝 뜨는 추성推聲이 신선했던 것이다. 그는 이 기법이 마치 제사의 향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그린 듯하다고 봤다. 김택수의 곡이 2015년 공연된 영상을 보면 대위법 등 서양음악의 기본적 작곡 틀을 가지고 썼지만 모든 음은 하늘로 날아가며 꼬리를 남기듯 미끄러지고 음정을 높인다. 서양 악기로는 도저히 구현할 수 없는, 이 불완전하게 상승하는 음정은 매혹적이다.


리듬은 또 어떤가. 문묘제례악의 기본 정신을 받들어 모시듯 호흡이 긴 리듬이 뒤로 갈수록 위트가 넘친다. 그러나 평소 서양 오케스트라와 실내악에서 유머와 해학을 유감없이 발휘하던 이 작곡가는, 이 작품에서만큼은 끝까지 절제한다. 다만 마지막 부분에서 마치 2000년 전을 돌아보듯 회상에 잠긴 멜로디를 짐짓 모른 척 넣을 뿐이다. 작곡가에게 첫 국악관현악이었던 작품은, 국악관현악을 처음 듣는 청중에게도 ‘필청곡’이 될 만한 자격이 있다.


아이디어와 기법에서 빛나는 김택수의 곡은 초연 후 재공연되지 않았다. 옛것에서 새것을 만들어내는 ‘리컴포즈’ 시리즈에서 호평받았지만 이후 무대에 오를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이다. 이 작품이 5년 만에 두 번째로 공연되는 무대가 ‘2020 마스터피스 : 정치용’이다.

 

당초 9월에 열릴 예정이었던 공연이 11월로 순연된 후에도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방역 조치 속에 연습을 이어왔다

 

묻혀 있는 보물을 다시 꺼내다
이렇게 초연 후 재연되지 못한 작품은 많다. 이는 어쩌면 국악관현악단이 새로운 작품 위촉을 태생으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 국악기가 모여 합주하는, 새로운 형식을 위한 콘텐츠는 늘 새로 나와야 했다. 여기에 맞춰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다양한 시리즈로 작곡가들에게 새로운 곡을 위촉해 왔다. ‘리컴포즈’를 비롯해 상주작곡가 제도, ‘3분 관현악’ 등에서 김택수와 같은 작곡가들이 국악관현악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도전했다. 이 새로움의 기치 아래 재공연의 여지는 많지 않았으리라. 국립국악관현악단이 25년 동안 위촉한 곡 중 재연 기회가 없었던 곡은 43곡에 이른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그중 네 곡을 골라 ‘2020 마스터피스 : 정치용’ 무대에 올린다.

 

(왼쪽부터) 아쟁 김영길, 대금 원완철, 거문고 이재하, 플루트 이예린


이번 공연은 국악관현악 창작사의 하이라이트이자 주요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다. 이 창작의 역사엔 김택수의 작품처럼 위트를 즐기는 시간과, 원형의 다양한 변신에서 지적 즐거움을 얻는 기회가 공존했다. 이번에 연주되는 플루트 협주곡 ‘긴 아리랑’이 후자의 예다. 이 곡의 변천사는 흥미롭다.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땐 북한 작곡가의 작품이었다. 작곡가 리한우가 2006년 경기민요 ‘긴 아리랑’을 플루트 협주곡으로 만들었다. 플루트가 서양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클래식 음악의 전형적인 협주곡이었다. 북한의 작곡가, 경기의 소리, 서양의 독주 악기와 교향악단이라는 묘한 조합이다. 2018년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위촉으로 장석진이 북한 단소와 국악관현악의 협연곡으로 바꿨다. 


이번 공연에서는 플루트와 국악관현악의 조합으로 돌아온다. 이 복잡한 변천사는 ‘서양+서양’에서 ‘동양+동양’, 다시 ‘서양+동양’으로 정리할 수 있다. 각 조합의 소리를 상상해 보라. 우리는 그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이미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관악기에서 바람이 나오는 소리가 동양과 서양에서 사뭇 다르다는 점을 안다. 이번 공연에서는 모호함과 명확함이, 불확정성과 안정성이 만나는 아리랑을 들을 차례다.


창작곡에서는 이질적인 성질들이 숙명적으로 만나게 돼 있다. 2015년 ‘리컴포즈’에서 초연된 김성국의 남도 시나위에 의한 3중 협주곡 ‘내일’은 즉흥성과 통제성을 맞붙였다. 남도 시나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주자의 자율이어서 굿 연행자들이 일정한 장단 위에서 자신의 생각대로 간다. 작곡가는 아쟁·대금·거문고 협연자들에게 맡겼다. 반면 관현악 합주는 궁극적으로 통제다. 김성국은 “이 곡의 작곡은 통제와 자유를 큰 틀에 녹여 하나의 큰 메시지를 담는 작업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어쩌면 서로 대척점에 있는 듯한 개념도 하나의 선 위에 있을 터. 작품 후반부에서는 관현악이 시나위의 즉흥연주를 닮게 되고, 음악은 거대한 합일로 향한다. 


작곡가의 노트에는 “세계 곳곳 죽음의 바다에서 계속되는 내일의 삶을 희망하는 몸부림, 힘없는 자들의 죽음에 대한 굿이다”라고 돼 있다. 2015년, 그는 세월호와 세 살 먹은 시리아 난민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 곡을 썼다고 했다. 5년이 지나 이 곡은 그때 그대로 재연된다. 기억을 정확히 불러내는 음악의 속성에 기대, 청중은 잊지 않을 힘을 얻는다.


2018년 초연된 최지혜의 메나리토리에 의한 국악관현악 ‘강, 감정의 집’도 재연곡으로 선정됐다. 작곡가는 물과 생명에 집중하고 음악으로 옮겼다. 힘이 넘치는 강, 강이 품은 이야기, 그 아래의 생명체로 음악의 초점이 이동한다. 이 곡의 초연은 국립국악관현악단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는데, 국악기의 사운드가 현대화해 시각적 효과를 낼 수 있는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초연으로 검증된 재료들을 무대에 올릴 주인공은 지휘자 정치용이다. 공연 제목에 자신의 이름을 건 그는 초연작 중 재연할 만한 작품을 직접 골라냈다. 기본적으로 서양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인 정치용은 음악의 현대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 작품들의 기본 뿌리는 국악이어도 21세기에 만들어진 음악이다. 지휘자로서 나는 거기에서부터 접근한다. 악보에 보면 전통적 국악 요소가 있고, 때로는 음향으로 가는 부분도 있다. 그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창작 국악을 연주하는 이들의 역할이다.” 


그는 언제나 동시대 예술인들의 생각에 귀를 기울여왔다. 같은 시대를 사는 수많은 작곡가의 초연곡과 재연곡을 다뤄온 지휘자는 이번 공연에 이름을 걸만한 인물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역사는 이제 25년이다. 국악관현악 역시 어떤 예술보다도 이력이 짧은 신생 장르다. 하지만 이 역사에 이식할 수 있는 인류의 유산은 무구했다. 수천 년이 된 우리 음악부터 생경한 지역의 낯선 사람들이 만들어낸 음악적 요소까지, 국악관현악은 넉넉히 품어 성장해 왔다. 그러므로 25년은 단순한 25년이 아니고, 내용 면에서는 몇 배로든 길어질 수 있는 그런 시간이다. ‘2020 마스터피스 : 정치용’에서 연주될 네 곡이 그 시간의 깊이를 증명할 것이다. 국악관현악이라는, 어쩌면 불분명한 꿈이었을 ‘미래화’의 사명으로 출발한 이 장르가 그동안 얼마나 과감한 융합을 해왔는지 보여준다. 이날 무대에 오를 네 곡은 새로운 장르를 용감하게 껴안아 온 국악관현악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상징할 것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Ⅰ
‘2020 마스터피스 : 정치용’
2020년 11월 25일
롯데콘서트홀
R석 5만 원 S석 3만 원 A석 2만 원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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