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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미르 상세

2020년 11월호 Vol.370

식탁 위의 작은 기품

내일의 전통 | 동춘상회&월 유기 커틀러리

유기 커틀러리가 우리에게 선물하는 것은 좀 더 기품 있고, 차분한 일상의 작은 시간이다

 

레트로 열풍이 반가운 이유 중 하나는 ‘참 좋았던’ 것들을 다시금 소환하기 때문이다. 유기도 그중 하나다

 

“처음부터 유기를 좋아한 건 아니에요. 옛날에 유기는 제사 때 나오는 물건이었잖아요. 엄마가 유기를 꺼내놓으면 동생이랑 앉아 닦으면서 번거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엄마가 쓸 때는 딱히 예쁘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잘 닦아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고요(웃음). 결혼할 때 엄마가 ‘유기 세트를 선물로 해줄까’라고 물으시길래 싫다고 했어요. 대신 로얄코펜하겐을 선물해 달라고 했지요. 그렇게 결혼을 하고 제 살림을 시작하니까 어느 순간 유기가 예뻐 보이는 거예요. 로얄코펜하겐 측에서 한옥 다이닝을 선보이며 찍은 사진을 봤는데 그릇 옆에 유기 커틀러리가 놓여 있더라고요. 유기도, 코펜하겐의 그릇도 둘 다 빛나는 느낌이었어요. 유기가 서양 식기랑도 잘 어울리는구나, 은은하게 반짝이는 것이 참 예쁘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으로요.”


삼청동에 있는 라이프스타일 숍 & 커뮤니티 월WOL의 주인이자 공예 애호가인 조성림 대표의 말이다. 그녀처럼 많은 이들에게 유기는 애매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존재하다 서서히 사라진 물건이니 기억이 흐릿하고 애매한 건 당연하다. 나는 유기를 생각하면 소설 ‘마당 깊은 집’에서처럼 1950~60년대를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이 떠오른다. 깊고 큰 유기 그릇에 장남을 위한 고봉밥을 듬뿍 담고 뚜껑을 닫아 뜨끈한 아랫목에 놓고 그 위로 밍크 이불을 덮어 보온을 유지하는. 금빛 은은한 그릇에는 무겁고 단단한 정情이 어려 있었다. 1960년대 후반 한식 음식점에 스텐(스테인리스강) 밥공기가 보급되고 1970년대를 기점으로 아파트 문화가 확산하면서 무겁고 관리도 어려운 유기는 슬슬 자취를 감춘다.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선생이 쓴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를 보면 놋그릇, 즉 유기의 쇠퇴에 관한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놋그릇은 사용하기 전에 얼룩을 지우고 광택을 내야 하는 등 손이 많이 가는 데 비해서 스텐 그릇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구입하자마자 세척해 마른 천으로 깨끗이 닦기만 하면 광택이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1960년대 중반이 되면 신혼살림을 장만할 때 놋그릇이나 양은 그릇은 뒤로 밀려나고 스텐 그릇이 큰 인기를 끌었다. 놋그릇이 부엌에서 밀려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연탄가스 때문이었다. 1960년대 가정의 취사용 연료는 나무 땔감에서 연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중략) 놋그릇은 연탄가스에 노출되면 고유의 광택이나 색이 변하는 바람에 관리가 무척 어려웠는데 이에 반해 스텐 그릇은 연탄가스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꽉 찬 만족감과 든든함이 느껴지는 금빛 커틀러리의 집합

 

동춘상회와 월이 함께 만든 커틀러리는 서양 식기와도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뽐내지 않는 고상한 아름다움
그랬던 유기가 다시금 미식 문화에 등장한 것은 특유의 기품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소확행’이 일어나는 가장 확실한 무대는 저마다의 식탁.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플라스틱, ‘짝퉁 도자기’인 멜라민 수지 식기에 음식을 담아 먹으면서 나를 대접한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비록 관리가 어려울지언정 큼지막한 유기 볼에 음식을 담고 그 옆에 금빛 커틀러리를 곁들이면 차분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만들어진다. 식기가 가벼우면 식탁에서 하는 행동도 가벼워지고, 식기가 무겁고 기품이 있으면 행동도 차분해지며 식사 시간도 안단테 무드로 흐른다. 


특정 제품이 과거의 영광을 이어받아 새로 길을 만들어가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다. 지자체가 개입할 수도 있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같은 기관이 디자이너와 장인을 연결해 새로운 상품을 개발·유통할 수도 있다. 그렇게 과거의 물건은 내일의 전통이 될 기회를 얻는다. 이번 유기 커틀러리처럼 공예에 애정이 있는 개인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와 협업해 직접 디자인을 도출하고 제품으로까지 만들어 출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흔한 일은 아니다.


“작년 겨울에 메종 오브제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어요. 경기도 이천을 포함해 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기능과 디자인의 테이블웨어가 나왔는데 그것들을 보면서 유기 제품도 이곳에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어요. 음식과 관련된 콘텐츠를 기획하고 선보이는 김혜준 대표님과 소셜 다이닝을 위한 상차림과 팁을 제안하면서는 유기 솥을 사용하기도 했지요. 뭐랄까. 유기에는 고상한 아름다움이 있어요. 은은한 럭셔리라고 할까요? 유기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던 차에 동춘상회에서 제안이 와 함께 유기 커틀러리를 선보이게 됐습니다.”


제작 파트너로는 조선유기공방이 함께했다. 경기도 시흥에서 3대째 유기그릇을 만들고 있는 소규모공방으로 40년 이상 경력의 장인들이 소속돼 있다. 장인들과의 협업에서 중요한 것은 소통. 기획자와 장인이 각자 살아온 세월, 추구한 미감, 꿈꾸는 비전이 다르기 때문에 초반부의 대화는 기름을 먹이지 않은 기계처럼 뻑뻑하게 흐르기 일쑤다. 이번 프로젝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조성림 대표는 제품의 디자인과 비전을 정확하게 공유하기 위해 말보다 이미지 위주로 소통했다. 한국의 백자는 물론 서구의 식기와도 잘 어우러져야 유기 커틀러리가 제자리를 찾는다고 생각해 서구의 커틀러리 역사를 살폈고 그중 가장 다양한 소재의 결합과 디자인이 풍성하게 꽃을 피웠던 바로크 시대, 그중에서도 심플하고 정제된 디자인에서 모티프를 얻어 디자인했다. 둥근 술목이나 집게와 연결된 술자루(막대)가 완만한 선을 그리며 살짝 올라와 있고 끝을 삼각형으로 처리해 날렵한 기운이 느껴지는 디자인. 숟가락과 포크가 한 쌍을 이루는데 그것들을 나란히 도열해 놓고 보면 은근한 조형미가 느껴진다. 연마 작업에도 신경 써 표면은 거울처럼 반들반들하다. 햇볕이 환한 곳에서 보면 은색이었다가 조금 어둑한 곳으로 옮겨 보면 금색 광채가 반짝하고 존재감을 드러낸다. 작은 조약돌을 쥔 듯, 적당한 무게감도 좋았다. 작은 팸플릿에 유기의 효능도 정리했는데 특히 이 부분이 눈에 띈다. “방짜는 고유의 배합으로 만든 청동 합금을 말하며 쓰면 쓸수록 뽀얗게 윤기가 나고 작업 중 베이거나 찔려도 덧나지 않으며 독이 없을 뿐 아니라 독을 죽이기도 하여 예로부터 궁중이나 대갓집에서 많이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위) 은은한 광택과 차분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커틀러리는 옻칠로 색을 올린 다양한 플레이트와도 잘 어우러진다

(아래) 조선유기공방의 장인들과 함께 만든 제품은 전체적으로 단정한 디자인이라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다. 이런 것이 장인의 손길과 감각 있는 기획자의 하모니


한국의 재료, 한국의 미감
유기는 여러모로 한국 식문화의 ‘원석’ 이라 할 만하다. 구리에 주석을 합한 청동으로 그 기원이 청동기시대까지 거슬러 오른다. 한국의 청동 합금 기술은 이미 삼국시대에 절정을 이뤘는데 대표적인 예가 반가사유상과 함께 한국 최고의 보물로 꼽히는 백제금동대향로다. 신라 시대에는 유기를 전담해 제작하는 관서 철유전鐵鍮典이 설치돼 합금 기술을 고도화했다. 안성맞춤이란 단어도 유기와 연관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양반가를 중심으로 유기를 사용했는데 사대부 집안의 안주인이 당시 유기공방이 번성했던 안성으로 내려가 그릇을 맞춘 데서 유래한 말이다. 


유기 커틀러리를 이야기의 주제로 삼고 몇 날 계속해서 사용해 보니 묘한 매력이 있었다. 포크는 집는 부분을 얼마나 길고 뾰족하게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어떤 것은 넉넉하고 또 어떤 것은 비녀처럼 날렵하다. 조성림 대표와 동춘상회에서 선보인 커틀러리는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체구와 단정한 얼굴이 매력적이다. 황금색이라 기운이 화려하지만 동시에 그윽하고 점잖다. “작년에 일본으로 라이프스타일 투어를 다녀온 적이 있어요. 일본에서 유명한 푸드 스타일리스트의 공간도 방문했는데 조선 유기를 쓰고 있더라고요. 당시에 만든 숟가락을 보면 어떻게 이렇게 비율이 좋을까? 감탄하게 돼요. 날렵한 디자인인데 날카롭지는 않죠. 손잡이 부분도, 숟가락의 머리도 일자로 쭉 편평한데 그래서 더 모던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런 디자인을 보면 멋을 내고 장식을 한 정형화된 디자인에서 완전히 초월한 듯한 느낌을 받아요. 그런 자유분방함에 일본 사람들이 매료되는 것 같고요. 지금도 조선 시대 숟가락과 젓가락이 나오면 10개고 100개고 되는 대로 사 가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전통이 계승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러브콜’을 받으면 된다. 스타일리스트에게, 주부에게, 디자이너에게, 식당 주인에게. 그러려면 일단 다양한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유기 전성시대가 반갑다. 오랫동안 유기의 약점으로 꼽힌 것이 관리의 어려움. 하지만 너무 다루기 쉽고 가볍고 ‘만만한’ 것에는 편한 즐거움은 있을지언정 찬찬하고 깊은 즐거움은 스며들기 힘들다.

 

정성갑  월간지 ‘럭셔리’와 디자인프레스에서 기자와 편집장으로 20년 가까이 일했다. 한 점 갤러리이자 콘텐츠 제작, 기획사인 ‘클립clip’을 운영한다. 저서로 ‘집을 쫓는 모험’이 있다
사진 제공 W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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