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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호 Vol.371

한국 합창, 고유한 세계

다시보기 하나 | 국립국악관현악단 ‘국악관현악과 한국 합창 : 시조 칸타타’


간결하면서도 황홀한 선율과 화성. 청중은 소리의 결합이 주는 웅장함에 압도돼 갔다

이 공연을 어떻게 담아내야 할지, 몇 번을 쓰고도 다시 시작한다. 그건 이 연주회가 참 좋았지만, 어떻게, 왜 좋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민족주의에 반대한다. 민족주의는 우리를 어떠한 목표점에 다다르게 하는 데에는 도움을 주지만, 실체 없는 신화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은 민족주의와 더불어 저항적 민족주의를 가지고 왔다. 그것이 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는 역담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에는 폐쇄와 배타를 일삼는 민족주의의 대표적 단점이 함께 들어 있다. 어쩌면 저항적 민족주의란 필요에 따라 때로는 민족주의처럼 실천적이고, 때로는 탈민족주의처럼 수용적일 수도 있다는 말인가?

‘한국 합창’이라니? 나는 이 기묘한 단어에 의구심을 가졌다. 우리는 여전히 합창이라는 것을 서양의 산물로 여기고, 이것에 구태여 ‘한국’이라는 기호를 넣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야만 하는지. 그것의 저항성은 무엇이며 실천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언어는 보이는 기호로서 음악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물질적이다. 독일 철학자 헤겔은 예술 중에서도 음악을 내면세계를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장르로 꼽았다. 그는 음악의 재료가 되는 음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그 시공간은 물질세계로부터 완전히 분리된다고 말했다. 나는 이것이 작곡가나 음악가가 가진 특권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아름다움에 매료될 수 있는(이러한 인지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갖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청중으로 하여금 각자 상상의 세계로 데려다 놓는 무한한 창작자의 능력 말이다.

지난 10월 2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국악관현악과 한국 합창 : 시조 칸타타’ 1부에서는 작곡가 최지운의 ‘윤슬’을 서곡으로, 작곡가 이건우·김순남·조두남이 남긴 가곡과 민요가, 2부에서는 작곡가 이영조의 위촉곡 ‘시조 칸타타’가 무대에 올랐다. ‘윤슬’은 전통 기악 모음곡 ‘영산회상’ 중에서도 장쾌한 맛을 주는 ‘타령’을 모티프로 한 곡이다. ‘타령’은 ‘상영산’으로 시작해 ‘군악’에 이르는 아홉 곡 가운데 여덟 번째 곡으로(낮은 음역 때문에 하현도드리가 없는 평조회상이나, 관악영산회상에서는 일곱 번째 곡이다), 긴 영산회상 한 바탕 중에서도 염불·타령·군악을 말하는 ‘염··군’에 이르면 분위기는 ‘거뜬거뜬’해지며, 특히 ‘타령’은 흥미로운 가락에 편안한 멋이 있는 곡이다. ‘타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곡을 서곡으로 선택한 것은 ‘시조 칸타타’에서 노래 모음곡 형식인 칸타타의 음악 형식과 잘 어울린다. 작곡가는 해체된 타령을 점차 완성하는 과정을 담아 작품으로 표현했으나, 단순한 동기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테마 분배가 안정적이지 않아 깊이 있는 영산회상의 유장한 멋이 오히려 미완성된 느낌을 남겼다. 화성을 액자 삼아 타령 선율을 넣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쓰라렸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청중으로서의 느낌일 뿐, 작곡가는 현대 감성을 반영하기 위한 의도였으리라고 생각한다.


이어서 근현대 세 작곡가 이건우(1919~1998), 김순남(1917~1986), 조두남(1912~1984)의 가곡과 민요가 국악관현악으로 편곡돼 무대에 올랐다. 이건우·김순남·조두남은 작곡가 윤이상(1917~1995)과 더불어 해방 공간解放空間에서 활약한 주요 작곡가들이다. 이들은 한국 가곡을 많이 남기기도 했다. 가곡은 시를 가사로 곡을 붙인 음악 형식으로, 예술성을 갖추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가곡을 예술가곡이라고도 부른다. 특히 가곡은 각 나라의 민족성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음악 형식으로 손꼽힌다. 이 형식은 유럽에서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이르러 완성됐고, 우리나라에서는 서양음악이 유입된 19세기말 이후 20세기에 이르러 ‘한국 가곡’이라는 이름으로 발전했다. 국악관현악곡으로 편곡한 이들의 작품은 2부에서 등장할 소프라노 이유라(이건우의 ‘금잔디’ ‘가는 길’)와 가객 하윤주(김순남의 ‘산유화’ ‘자장가’), 테너 신동원(조두남의 ‘새타령’ 민요 ‘박연폭포’)이 노래했다.  

20세기 초부터 한국에서 유행한 ‘한국 가곡’과 다르게 한국에도 전통 ‘가곡’이 있다. 한국 전통 가곡은 시어를 음미하는 속도가 매우 느리다. 예를 들어 여창 가곡 ‘우락羽樂’의 경우를 보면 첫 구절 ‘바람은’이라는 이 세 글자는 열한 박자 안에 부른다. 다섯 음(황종·태주· 중려·임종·남려) 내에서 음을 흔들고, 가성이라 하는 ‘속소리’와 진성이라 하는 ‘겉소리’를 교차해 가면서 자음과 모음을 분리해 부르는 식이다. 다섯 음이 기본음이라고 해서 다섯 음정만 있는 건 아니다. 흔들거나 밀어서 내는 추성이나 음의 끝을 내리는 퇴성, 전성 등을 통해 악보에는 표기되지 않는 미분음이 끊임없이 등장하는데, 균일한 진폭으로 반음이 올라가거나 내려가기 때문에 다섯 음정보다 훨씬 풍성한 소리가 있다. 이를 연주자는 시공간의 에너지와 자신의 감정을 느끼면서 시를 천천히 음미한다. 소규모 관현악기 반주와 함께 부르는 이 곡은 노래하는 가객과 연주자가 호흡을 맞추며 연주하고, 곡 중간중간 숨자리와 쉼표에 따라, 가야금이나 거문고가 청을 치면 음을 맞춰가는데 이러한 과정이 모두 고도의 음악성으로 표현되는 게 ‘한국만의’ 묘미다.


서양음악과 한국 전통음악의 발성을 모두 껴안은 이영조의 ‘시조 칸타타’ 
이번 연주회에서 무엇보다 기대를 모은 작품은 작곡가 이영조(1943~)의 ‘시조 칸타타’다. 서양음악의 성악 발성과 한국 전통음악의 가곡 성악 발성을 포용하는 이 작품은 이들의 이색적 현연現然과 합창을 위한 칸타타 형식을 취한다. 작곡가가 평소 자주 음미하던 고시조 열한 수를 주제에 따라 3부로 구성해 한시간 분량의 곡으로 완성했다. 고시조는 고려시대 말에서 조선시대 문인들이 남긴 시로, 인간과 자연이라는 주제하에 자연·사랑·효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첫 곡 ‘하늘 땅’의 전주는 팀파니와 북이 침묵을 깨고, 음높이가 다른 북 세 개가 여음을 이어가자 합창단 목소리와 피리가 물결치듯이 밀려 들어온다. 이색적인 음 진행이 지나니 한국 장단이 고개를 내민다. 장엄한 목소리 사이로 장구 장단이 넘실대고 해금은 몇 개 성부로 나뉘었는지 알 길이 없다. 

합창이 처음 낸 세 음은 한국 민속악에서 본청 한 음 윗음정이다. 이 두 음은 주로 격하거나 슬픈 감정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데, 꺾거나 눌러내는 음을 평으로 사용해 아스라한 진취감을 주었다. 같은 간격을 사용해 아래로 내린 선율의 테마가 답한다. 음고를 운용하는 폭이 비교적 넓으며 텍스처는 짙고 풍성하다. 합창이 짧게 끝나자, 테너가 조선의 문인 허자의 시를 노래한다. ‘자연-조물주가 말하되’는 자연의 조화로움과 우주의 근원을 담고 있다. 테너와 소프라노, 합창이 웅장하고 화려하게 봄과 여름을 노래하는 중 국악관현악은 서양 오케스트라에 견주어도 전혀 옹색한 느낌을 주지 않으며, 오히려 풍성하고 결이 살아 있는 느낌이다. 이 악기 구성에는 전자악기가 전혀 들어 있지 않고, 목소리와 국악관현악, 첼로 4대와 더블베이스 2대가 사용됐다. 이전에 간혹 등장하던 국악관현악에서의 신시사이저 같은 전자 음향이 더는 필요하지 않다. 간결하면서도 황홀한 선율과 화성이 계속됐고, 청중은 소리의 결합이 주는 웅장함에 압도돼 갔다. 

가을이 오자 피리 소리가 유장함을 더하고, 가객 하윤주가 조선 문인 이신의의 시를 노래한다. 테너 신동원과 소프라노 이유라가 초입에서 압도해 온 분위기를 이어서 서양음악의 발성법이 아닌, 한국 전통음악의 발성법으로 ‘겉소리’와 ‘속소리’를 적절하게 변용해 가면서 콘서트홀의 공기를 그윽하게 이끌었다. 여기에서 사용되는 관현악은 주로 전통음악 어법을 사용하고 있고, 곡 전체에서 시 음미의 무게가 균형 있게 잡힌다. 이렇게 시 열한 수를 음미하고 나면, 곧 곡이 끝난다.

초연곡 ‘시조 칸타타’로 한 시간이 지났다. 현실에서 두 세계는 언제나 공존한다. 그 세계는 둘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이번 무대는 ‘한국 음악가’이자 ‘이영조’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작곡가의 완성돼 가는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사회학자 알렉산더의 말이 떠오른다. “예술과 미학은 형태를 고수하는 것보다 늘 새로운 영향에 열려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소리의 경합은 끝내 결합으로, 고유한 세계가 만들어진다.

국립국악관현악단 

‘국악관현악과 한국 합창 : 시조 칸타타’

2020년 10월 22일

롯데콘서트홀


정우정 음악평론가. 한국음악·한국춤·현대 예술에 관련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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