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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호 Vol.371

다른 장르에서 자신들의 음악을 창조해 내다

경계를 넘는 예술 | 경계를 넘는 음악의 현주소

2020 여우락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이날치. 판소리 ‘수궁가’를 여러 소리꾼들이 연극적 연출과 펑키한 리듬감으로 살렸다


훈계와 압박으로 원형이 지켜진 경우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변화를 주도하는 이들조차 언젠가는 다시 변화를 감행하는 이들에게 자리를 비켜주어야 한다


모든 음악은 경계를 넘는다. 아니 모든 음악은 경계를 넘은 결과물이다. 어떤 음악은 수천 년 내내 원형 그대로 존재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경계를 한 번도 넘지 않은 지고지순한 음악은 전무하다. 우리 곁에 있는 음악은 모두 국가의 경계를 넘었고, 시간의 경계를 넘었으며, 장르의 경계를 넘었다. 최근에는 젠더와 세대의 경계도 허물고 있다. 대중음악에 대한 책을 한 권이라도 읽었다면 더 잘 알 것이다, 하나의 장르가 만들어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장르가 만나고 스며들었는지. 국경과 지역을 넘어서지 않고, 특정 장르의 경계를 부수지 않고 우리 곁으로 온 대중음악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음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경계를 넘으며 변화한다고 해야 한다. 물은 100도에서 끓지만 100도가 되기 전에 99도까지 달아오를 준비를 해야 한다. 어느새 팔팔 끓어 새로운 장르의 이름을 갖게 된 음악이 많은데, 아직 새로운 이름을 갖지 못한 무수한 음악은 대개 퓨전이나 크로스오버라고 통칭한다. 특히 대중음악과 고전음악이나 민속음악·전통음악이 만날 때 퓨전이나 크로스오버라고 한다. 대체로 록·재즈·포크 쪽에서 이 같은 시도를 감행하는 경향이 많다. 덕분에 우리는 계속 색다른 음악의 조합을 즐기게 됐다. 끊임없는 월경의 시도와 변화가 예술의 본질임을 이해하고 인정하게 됐다.

원형과 변화 사이에서 
돌이켜 보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는 기존의 원형·원칙을 지키려는 이들과 변화를 시도하는 이들 사이의 갈등과 쟁투, 그리고 타협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부터 그 모습 그대로인 것은 거의 없지만, 한번 공고해진 체계와 방식은 불문율처럼 작동한다. 반드시 그대로 해야 하고, 어떠한 이견도 허용하지 않을 때 필연적으로 반기를 드는 이들이 등장한다. 권력욕 때문이든, 정의와 평등에 대한 의지 때문이든, 자유의 표출이든 마찬가지다. 다른 계급·세대·이데올로기·젠더·지역 등을 기반으로 한 차이가 등장할 때 우리는 상대적 관점을 가질 수 있고 비교할 수 있으며, 선택할 수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권위 있는 선생님들이 주도하는 음악이 다른 방식을 허용하지 않을 때도 많았지만, 훈계와 압박으로 원형이 지켜진 경우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세상이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이다. 고집을 피운 이들도 결국은 백기를 들고 만다. 그리고 변화를 주도하는 이들조차 언젠가는 다시 변화를 감행하는 이들에게 자리를 비켜주어야 한다. 세상은 그런 식으로 흘러왔다.

대중음악의 어법과 사운드
이제는 한국 전통음악이나 고전음악에도 퓨전이나 크로스오버가 흔하다. 오케스트라가 록 밴드와 함께 연주한 지는 이미 오래됐다. 최근에는 오케스트라가 케이팝을 변주한다. SM엔터테인먼트는 서울시향과 함께 여성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의 ‘빨간 맛’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선보인 데 이어, 보아를 비롯한 다른 뮤지션의 곡도 오케스트라로 변주했다. 많은 이들에게 팝페라가 익숙하고, ‘열린음악회’나 ‘불후의 명곡’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인들이 대중음악을 접목해 노래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지금은 대중음악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시대임이 분명하다. 고전음악에서나 전통음악에서 대중음악의 어법을 흡수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반대의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사실 음악계 한 켠에서 한국 전통음악과 클래식의 만남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소수 음악 팬 이외에는 관심을 갖는 이들이 거의 없다. 대중음악 바깥의 음악이 자꾸 대중음악과 협업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일지 모른다. 대중음악의 어법과 사운드를 거치지 않고서는 지속 가능한 음악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크로스오버, 퓨전의 시대
한국 대중음악과 전통음악 안팎에서 얼마나 많은 접목이 있었는지 되짚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50여년이 흐르는 동안 김덕수·김영동·김태곤·송창식·정태춘 같은 이름은 특정 세대에게만 기억되는 이름이 됐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조차 28년 전 노래다. 공명·꽃별·그림The林·바람곶·사계 같은 팀들이 퓨전 국악 시대를 연 지도 십수 년이 넘었다. 이제 ‘국악한마당’이나 국악방송의 수많은 프로그램에는 어지간한 음악 팬조차 다 알지 못할 정도로 많은 크로스오버·퓨전 팀이 등장한다. 당연히 팀마다 추구하는 사운드가 다르다. 정악과 민속악, 연주와 노래 사이에 다른 길이 열렸다. 차용하거나 흡수한 대중음악 장르 역시 천차만별이다. 관련 전문가나 애호가가 아닌 사람들은 대체 어떤 음악이 얼마나 펼쳐지고 있는지 모를 테지만,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경천동지할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방탄소년단처럼 전 세계적 스타는 없다. ‘하여가’ 같은 히트곡이 줄줄이 이어지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한국 전통음악 기반의 크로스오버·퓨전 음악이 예전과 비교하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음악의 품과 양, 깊이에 있다. 사물놀이가 유행하고, 논버벌 퍼포먼스가 유행하고, 신시사이저를 활용한 국악 팝 음악이 유행했을 때와는 비교하기 힘들다. 활동하는 범위도 예전과 다르다. 최근의 크로스오버·퓨전 뮤지션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불러주는 곳에만 찾아가는 방식도 아니다. 먼저 문을 두드리고 에이전트를 구한다.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고 음악 마켓에서 음악을 알린다. 관계 기관도 적극적이다.

국악기로 들려주는 사운드의 전형을 부숴버린 잠비나이의 무대 


국악기에 에스닉한 사운드를 결합해 전혀 새로운 음악을 만든 두번째달 


잠비나이·두번째달·씽씽 그리고 이날치 
이 변화를 일군 이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맨 먼저 써야 할 이름이 있다. 잠비나이와 두번째달, 씽씽과 이날치다. 전통음악을 전공했지만 국악에만 종사하지 않은 밴드 뮤지션 이일우와 김보미·심은용으로 시작한 잠비나이는 국악기로 들려주는 사운드의 전형을 부숴버렸다. 국악기로 록을 연주했기 때문이 아니다. 잠비나이는 전통적이거나 대중적인 사운드의 이분법을 깨뜨렸다. 드러머 최재혁과 베이시스트 병구를 불러들여 밴드 편성을 갖춘 잠비나이는 국악기와 대중음악 악기를 결합해 록 사운드를 뽑아내면서 전통음악 주법과 대중음악 주법을 화학적으로 용해했다. 그 결과 전통음악의 아우라를 담지한 채 록 음악으로 나아감으로써 다른 세계의 음악 팬들을 뒤흔들었다. 음악을 만들어낸 방식뿐만 아니라 활동을 펼친 방식에서도 잠비나이는 경계를 넘는 음악의 폭발력을 예비했다. 

에스닉한 사운드를 결합해 주목받은 두번째달은 돌연 ‘춘향가’를 품었다. 두번째달은 판소리의 고색창연한 무게감을 화사하게 물들였다. 고영열·김준수를 비롯한 젊은 소리꾼들이 그 역할을 함께 도맡아 ‘춘향가’는 현재의 청춘들이 즐길 수 있는 사랑 이야기로 거듭났다. 잠비나이가 파격을 담당하고, 두번째달이 팬시함을 담당했다면 씽씽과 이날치는 힙을 담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영규와 이희문을 비롯한 전통음악과 대중음악계 명장들이 손잡은 씽씽은 드래그 퀸Drag queen 복장으로 시각적 충격을 안겼을 뿐 아니라, 클럽에서 따라 부르며 춤출 수 있는 노래, 힙스터들이 주목하는 음악으로 파란을 일으켰다. 안타깝게도 씽씽의 행보는 NPR 라이브를 정점으로 멈춰버렸지만, 이날치로 이어져 만개했다. 판소리 ‘수궁가’를 여러 소리꾼이 연극적으로 이어가는 노래로 편집하고, 펑키한 리듬감을 부각했으며,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와 협업하면서 이날치는 관객에게 눈과 귀가 모두 상큼해지는 경험을 선사했다. 음악뿐만 아니라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유희성을 극대화한 전략의 승리라고 할만하다. 그 덕분에 이날치는 최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누비며 종횡무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네 팀의 이름을 적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니어 이스트 콰르텟Near East Quartet과 신노이SINNOI가 있고, 악단광칠과 추다혜차지스가 있다. 한국형 트랜스 음악을 표방한 루츠리딤Roots Redeem도 있다. 제각각 다른 음악의 손을 잡은 음악들은 이제 전무후무한 자신들만의 음악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는 그 끝을 상상조차 못 하겠다.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 음악만큼 빵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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