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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호 Vol.371

코로나 시대, 삶과 죽음을 기억하라

안목의 성장 | 감염병에 맞선 불멸의 음악

프랑스 화가 미셸 세르(1658~1733) 그린 ‘마르세유의 흑사병

코로나19가 삼켜버린 시간 앞에서 무력해진 우리는 시대를 삼킨 공포를 어떻게 음악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전염병, 그 속에서도 음악가들은 희망을 찾았다 

전염병이 인간의 삶을 옥죄어 올 때마다 음악이 몰두한 주제가 있다. 마치 유행이라도 타듯 어떤 주제적 경향을 띤다. 불멸·죽음·유한한 시간·장례식·슬픔 등의 뼈아픈 성찰이 음표를 통해 번역돼 왔다. 그렇다면 우리가 겪는 코로나19 상황은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적 시선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감염병의 장애 속에서도 음악은 창의성의 비옥한 토대를 발굴할 수 있을까.  

2020년 3월 이전엔 전혀 상상할 수 없던 비현실적 일상, 코로나19는 우리 삶과 예술에 격렬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지나가는 태풍과 같이 일시적 위기이길 바랐지만 조만간 회복되리라는 기대는 점점 무력해지고 있다. 오랜 시간 일상이 멈추자 질문의 시간이 찾아온다. 음악으로 펜데믹 시대를 위로할 수 있을까. 전염병이 일으킨 공포를 음악은 어떻게 극복해 왔을까? 

페스트라 불리던 흑사병은 14세기 중반 발생한 지 5년 만에 유럽 인구 3분의 1에 이르는 25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 버렸다. 온몸에 붉은 수포가 올라오면서 사나흘 만에 죽음에 이르자 사람들은 눈만 마주쳐도 옮는다며 공포에 시달렸다. 그러곤 하늘이 내린 형벌, 인간의 부도덕함이 초래한 신의 분노라 여겼다. 단테의 ‘신곡’이나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같은 문학작품은 흑사병의 고통에 뒤엉킨 인간의 욕망과 타락을 처절히 증명하고 있다. 

우울함을 물리치는 마법 
중세 프랑스의 음악가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는 흑사병으로 투병하며 고통을 몸소 견뎠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고용한 귀족이 이 병으로 사망하는 광경까지 목도해야 했다. 그 서러운 처지를 음악으로 토로할 법한데 마쇼의 철학은 달랐다. “음악은 웃고 노래하고 춤추는 과학이다. 우울과는 상관없다.” 당대 유행한 갈레니즘 의학 이론이 마쇼에게 영향을 주었으리라 추정한다. 흑사병에 걸리는 까닭은 어두운 감정이나 슬픔이 일으키는 흑담즙의 과잉이라는 것. 건강한 붉은 피의 순환을 촉진하기 위해선 우울함을 물리치고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맥락의 연장에서 마쇼가 남긴 애가哀歌의 제목이 퍽 의미심장하다. 죽음을 슬퍼하고 한탄하는 노래에 그가 붙인 제목은 ‘행운의 치료법, 저녁에는 눈물 흘려도 아침에는 웃는다’란 긍정의 다짐이었다.         

흑사병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기, 아이들이 원을 그리며 빙빙 도는 놀이가 유행한다. 이때 부른 노래는 ‘장미 주위를 둥글게 돌자Ring around the Rosie’란 동요였다. 멜로디 자체는 마쇼의 철학처럼 발랄하기 그지없지만 가사는 당대 상황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장미 주위(=붉은 수포)를 둥글게 돌자 / 약초 가득한 주머니 / 엣취, 엣취 / 모두 쓰러지고 말았네(=죽음).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노래가 전염병의 공포와 서글픈 이격을 드러내고 있다.

(좌) 1918년 10월 미국 음악잡지 ‘뮤지컬 쿠리어’ 1면 하단에 실린 시카고 오페라단의 순회공연 취소 기사. 스페인 독감의 대유행으로 공연장이 폐쇄됐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우) 인플루엔자에 걸릴 위험 없이 축음기로 다양한 공연을 감상할 수 있음을 광고하는 에디슨 축음기


전염병에 맞서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린 바흐도 전염병에 맞선 음악을 남겼다. 1723년에 작곡한 칸타타 ‘내 몸 성한 곳 없으니’(BWV25)는 당시 1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마르세유 대역병 희생자들을 다독인다. 칸타타는 남녀 혼성 합창으로 비장한 악상을 토해내며 시작된다. 불협화음을 가운데 감싸 안은 3음 음형이 사슬처럼 반복되는데, 이 불편한 울림은 몸뚱어리를 갉아먹는 병균을 연상케 한다. 낭독하듯 이어지는 남성 가수의 레치타티보엔 아예 직설적 단어들이 등장한다. ‘고열’ ‘죄악’ ‘페스트’ ‘병균’ ‘해독제’ ‘병원’. 페스트균이 온몸에 퍼지는 고통, 그 절박함을 토로하는 것이다. 마지막 악절에선 이렇게 절규한다. “이 고통에서 누가 나를 도울 수 있단 말입니까.”    

코로나가 아무리 맹위를 떨친다 해도,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기록한 호흡기 질환은 여전히 스페인 독감이다. 1918년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하며 불과 3년 만에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인 5억 명을 감염시키고 5000만 명을 사망에 이르게 했으니 말이다. 노년층의 건강을 맹렬히 위협하는 코로나19에 비해, 스페인 독감은 20~30대 청년에게 가장 치명적이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미 망가진 세상을 한 번 더 초토화한 것이다. 

1918년 10월, 음악 잡지 ‘뮤지컬 쿠리어Musical Courier’ 1면에 실린 기사들은 100여 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비슷한 동병상련을 느끼게 한다. “시카고 오페라단의 순회공연이 취소되고 인플루엔자로 많은 콘서트홀이 폐쇄됐다.” 잡지의 다른 귀퉁이에는 스페인 독감의 틈새를 공략하는 전략이 눈에 띈다. “전염병에 걸릴 위험 없이 대규모 그랜드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다.” 에디슨 축음기를 홍보하는 문구다.  

당시 브라질로 순회공연을 떠난 작곡가 다리우스 미요는 스페인 독감으로 발이 묶여버렸다. 고향 프랑스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이국 땅에서 맞닥뜨린 전염병의 공포를 그는 이렇게 묘사한다. “관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고, 짐수레가 던진 시체가 공동묘지에 쌓여갔다.” 2020년 외신이 전해온 브라질 상황은 미요가 증언한 100년 전과 다르지 않다. 코로나로 사망자가 급증하는데 무덤은 턱없이 모자라니 굴삭기까지 동원된 것이다. 

그러므로 전염병 희생자를 위해 미요가 작곡한 ‘목관 앙상블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치유력을 지니고 있다. 통상적이라면 화려한 피날레로 마무리했을 마지막 악장을 미요는 희생자를 기리는 장송 행진곡으로 마감한다. 전염병이 인간의 삶을 옥죄어 올 때마다 음악이 몰두한 주제들을 다시 떠올려 본다. 불멸·죽음·유한한 시간·장례식·슬픔 등의 뼈아픈 성찰이 100년의 시간을 관통하며 생생히 살아 있다.   

조은아 피아니스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서울대 음대 기악과 및 독일 하노버음대, 파리 고등사범음악원, 말메종 음악원을 졸업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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