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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호 Vol.371

바닥이 입체가 되는 전위의 세계

내일의 전통 | 김현종의 ‘무-경계’

홍송에 블랙 스테인을 먹인 작품. 화려한 한옥의 서까래 아래에서도 위풍당당하다


바닥이 가진 평면성을 입체로 바꾸었더니 그 존재감이 뚜렷이 살아난다. 공기처럼 너무 자연스럽게만 생각했던 바닥, 그 존재의 재발견

오는 12월 8일까지 통의동 아름지기에서 열리는 전시 ‘바닥, 디디어 오르다’는 기획과 콘셉트가 독창적인 전시다. 그저 깔고 가는 ‘바닥’을 주연으로 끌어올린 대담함이라니. 여러 작가가 참여해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는데 유독 김현종 작가의 이름과 작품이 도드라졌다. 

집과 건축에서 바닥은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 이상의 존재감을 인정받지 못할 때가 많다. 바닥을 다지고, 고르고 나면 기둥이 올라가고 골조가 세워져 어엿한 건축물이 완성되는데 바로 그때부터 진정한 창의력의 묘가 발휘되는 터라 그저 평평한 면에 눈길을 주는 이는 많지 않다. 시작이자 기본. 마치 절대적 운명처럼 평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바닥이다. 

김현종 작가의 ‘무-경계’를 보고 놀란 것은 모두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 바닥의 평면성을 입체로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통의동 아름지기 전시장 2층으로 올라가면 마당 옆에 한옥이 자리하는데 그의 작품은 여러 개의 방 중 하나를 꽉 채우고 있다. 한옥 자재로도 많이 활용하는 홍송을 사람이 앉고 기댈 수 있을 만큼 야트막한 높이와 너비로 재단한 다음 양옆을 자연스럽고 완만한 곡선으로 깎은 작품. 큼직한 사각 판재가 깔린 한옥 마루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그 사각 판재 하나하나가 입체 모듈로 불쑥 솟아오른 형태라 임팩트가 남다르다. 나는 그 작품을 보면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벼랑 위의 포뇨’가 생각났다. 파도가 입체적 ‘근육’을 갖고 바다를 넘나들며 앞으로 달려가는 장면. 요철처럼 입체적인 작품에서 묘한 역동성이 느껴졌다.  

그 모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길이는 160cm, 높이는 약 40cm로 동일하되 처마처럼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양쪽 라인의 길이를 짧은 것과 긴 것 두 가지로 제작해 은근한 율동과 리듬을 만들어낸다. 해체와 조합도 가능하다. 여러 개의 모듈을 원하는 곳에 툭툭 떨어뜨려 놓을 수도 있고, 한자리에 힘 있게 모아놓을 수도 있다. 게다가 홍송의 색은 숯처럼 까만 검정. 표면에 블랙 스테인을 바른 것으로 다른 색은 하나도 없이 검은색으로만 임팩트를 준 나무는 힘과 개성이 넘친다. 이곳을 두 차례 방문했는데 창호문 사이로 빛이 투과돼 검은 모듈에 깊은 광선을 드리운 광경은 노란 장판에 떨어지는 것과는 또 다른 기운이었다. 깊고 강렬하다고 할까? 침묵을 중시하는 무사의 방에 들어간 기물처럼 묵직한 맛이 있었다. 납작한 마루판이 입체 형태가 되고 따뜻한 나무색이 침묵의 블랙으로 치환된 작품을 보면서 작가의 이름을 다시 들여다봤다. 

(좌) 직선과 곡선, 사각과 반원, 해체와 조합을 치밀하게 구성했다

(우) 원래의 바닥보다 40cm가량 높아진 ‘마루’에서 보는 풍경은 사뭇 색다르다


‘편안한 우아함’의 비밀

아름지기에서 만난 김현종 작가는 온통 검은색 차림이었다. 프랑스에서 오래 공부한 탓에 한국에서는 덜 알려졌는데 이렇게 큰 기관과 전시를 하고 또 인터뷰하는 일이 낯설다고 했다. 단어를 하나하나 천천히 골랐고, 필요하다 싶을 때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며 부연 설명을 했다. 

실내 건축과 인테리어, 가구 디자인과 제작, 더 나아가 건축물 설계까지 진행해 작업이 유독 다양했는데 모두 섬세한 디테일과 균형이 있었다. 한옥 바닥을 들어 올린 배경부터 물었다. “저 역시 바닥을 평면으로만 생각했어요. 이번 전시에서 자문에 응해 주신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님이 바닥을 ‘공기와 같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적확한 비유라고 생각했어요. 공기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생각해 밟고 있으면서도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니까요. 그런 바닥을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싶었어요. 바닥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면서 크게도 보고, 작게도 보다가 바닥이 결코 평평하지만은 않음을 알게 됐어요. 한옥 마루도 자세히 보면 튀어나온 부분이 있고, 길 바닥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더라고요. 어쩌면 평평한 것은 인위적인 것이고 바닥은 자연스럽게 높낮이가 있는 것 아닐까 싶었어요. 한옥 마루를 보면 어떤 것은 장마루로 패턴이 길게 돼 있고 또 어떤 것은 우물마루 패턴을 하고 있는데 어디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곡선과 수직선, 높낮이가 다르게 와닿더라고요. 그런 관찰 결과를 결과물로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입체적 결과물을 만드는 데도 공을 들였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쓴 것은 그 입체가 한옥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었다. 역시 많은 공부를 했는데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준 것은 한국의 전통문화 유산이었다. “모듈의 각도와 선의 비율을 정하는 것이 관건이었어요. 달항아리를 포함해서 한국의 궁·처마·문을 열심히 들여다봤는데 똑떨어지지 않는 애매한 부분이 있었어요. 이론적으로는 각도가 좁아야 하는데 오히려 더 크게 호방한 선을 그린다거나 전체 구조와 비율만 따지면 윗부분이 더 가파르게 꺾여 들어가야 맞는데 오히려 완만한 선으로 처리하는 식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모호한 디자인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편안한 비정형의 선을 만들어내더라고요. 저런 곡선과 곡률은 어디서 나온 걸까? 지금도 궁금한데 선조들이 추구한 디자인이 그렇듯 계산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디자인 아니었을까 싶어요. 이런 부분은 아름지기에서도 이야기하더라고요. 한국 문화유산에서는 이 부분은 90도, 저기서는 170도 하는 식으로 정확한 수치와 비율을 적용하기가 힘들다고. 이렇게 만든 물건이나 건축물은 뭔가 편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데 일본에서는 이런 미감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아요. 극도로 정교한 디자인이지만 이런 느긋한 매력은 없는 거죠.”

이런 얘기를 들으면 나는 한국 특유의 미감이라 일컬어지는 ‘자연미’가 혹시 정교하고 세심하지 못한 디테일을 두루뭉술하게 포장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생각을 해보진 않았어요. 오히려 더 정교하고 더 세심하기 때문에 그런 자연스러운 미감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싶어요.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같은 곳에서 하는 전시를 보면 장신구며 청화백자·불화 같은 것이 엄청나게 정교하잖아요. 디테일이 떨어져서 자연스러운 쪽으로 간 것 같지는 않아요. 한국 건축에 특히 관심이 많은데 절대 투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궁의 처마 라인 하나만 봐도 굉장히 아름다운 면이 있어요. 편안하면서도 우아하지요. 디테일이 강조되면 때로 숨이 막히는데 한국 건축물은 그렇지 않아요. 섬세하면서도 편안해요.”

(좌) 3개의 레이어를 겹쳐 완성한 사이드 테이블. 대리석과 오크를 사용했다

(중) 한옥의 '공포' 부분에서 영감을 얻은 조형물

(우) 의자로도, 좌대로도, 진열대로도 사용 가능한 오브제. 목재, 알루미늄, 구리 등 다양한 재료를 각개격파하듯 섭렵 중이다


특정 키워드로 수렴되지 않는 무경계의 세계
그의 작업은 특정 키워드로 수렴되지 않는다. 건축가이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면서 가구를 포함한 각종 오브제를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까닭에 작업의 범위가 유독 넓다. 그가 소셜 미디어를 포함한 자기소개란에 건축가나 인테리어 디자이너라 한정하지 않고 ‘아뜰리에 케이에이치제이Atelier_KHJ’라 적는 이유다. 나무와 금속을 포함해 다양한 재료를 도장 깨기 하듯 하나씩 섭렵, 적용하고 다이닝 테이블부터 사이드 테이블까지 다양한 가구를 계속해서 선보인다. 구리로 만든 거대한 데스크와 상판을 석 장이나 올려 레이어드가 돋보이는 테이블도 눈에 띈다. 최근 설계한 건물 공사가 한창인데 철빔 구조체를 장식처럼 정교하게 덮은 홍송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작은 디테일이 완성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건물 전체로 확장되는 모습도.

“프랑스에서 건축대학교와 대학원을 수료하고 설계 사무소를 다니다가 한국에 온 지 5년 됐어요. 이런저런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지만 본업은 건축설계와 인테리어 디자인입니다. 건축가라고 해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라고 해서 꼭 그 일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르 코르뷔지에도 건축부터 가구 디자인까지 다양한 일을 했잖아요. 저 역시 그런 경계를 두지 않고 제 세계를 구축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 연장선상에서 그가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프로젝트가 ‘빌딩Building’. 건축을 통해 알게 되고 경험한 여러 형태와 구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제작한 창작물로 그리스 신전 같은 형태부터 기하학적 구조가 재미있는 디자인까지 유용함과 무용함을 넘나드는 상상력이 재미있다. 

“건축은 클라이언트 잡job이잖아요. 그렇다 보니 의견 조율이 필수고요. 빌딩 프로젝트는 클라이언트도 없고, 어떤 목적도 없이 저 혼자 다양한 재료의 물성을 이용해 구조적 실험을 해보는 작은 실험이에요. 숨구멍 같은 거요. 한옥이나 궁을 보다 보면 공포(기둥 위에서 지붕을 떠받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 넣는 중간구조물)가 특히 눈에 띄어요. 역피라미드 형식인데 구조적으로 매우 흥미롭습니다. 저걸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 볼까 싶어 육송을 기하학적으로 배치해 대목장분에게 보여드렸더니 이게 뭐냐고 하시더라고요. 밑에 갈 것이 위에 가 있고 위에 있어야 할 것이 아래에 있으니까요. 나무의 몸통과 각재도 입체적으로 막 섞여 있고(웃음). 쉽게 알아채실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오히려 확신을 갖게 됐어요. 흔한 결과물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앞으로도 이런 작업을 계속 병행하고 싶습니다.” 

그 무경계의 세계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또 어떤 전복顚覆의 미감을 보여줄지, 이 젊은 디자이너의 내일이 궁금하다. 

정성갑 월간지 ‘럭셔리’와 디자인프레스에서 기자와 편집장으로 20년 가까이 일했다. 한 점 갤러리이자 콘텐츠 제작, 기획사인 ‘클립clip’을 운영한다. 저서로 ‘집을 쫓는 모험’이 있다 
사진 제공 김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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