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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

해금

두 줄이 만들어 내는 경쾌한 소리

『악학궤범(樂學軌範)』의 『문헌통고(文獻通考)』를 인용하면 “해금(奚琴)은 호중(胡中) 해부(奚部)가 즐기던 악(樂)으로 현(鉉)에서 나왔으며, 그 형체도 이에 류(類)한다.”라고 하였다. 『한국 악기 대관』에서는 “원래 중국 당·송 이후로 속악(俗樂)에 쓰이던 악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고려 예종 때 우리나라에 유입

중국의 악기 분류를 보면, 한(漢) 이후 주(周) 시대와 그 이전의 악기를 아부(雅部)라 하고 외국에서 들어온 악기는 호부(胡部), 중국악기를 속부(俗部) 등으로 나누는데, 여기에서 해금은 호부에 속한다. 즉 해금은 중국 동북방의 해부족에 속하는 유목민들로부터 생겨나서 중국 본토에 수입되었고, 당·송 이후로는 속악에 쓰여 오다가 고려 예종 때 우리나라에 들어와 개량·제작되어 사용되어 왔다. 고려 예종 9년에 당의 휘종(徽宗)이 보낸 악기 속에는 들지 않았으나, 고려 때의 ‘한림별곡(翰林別曲)’에 의하면 해금은 일찍부터 향악에 쓰여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려조(高麗朝) 이후로 궁중제사와 연례용 향악에 쓰이다가 뒤에는 당악과 민속악에도 널리 사용되었다. 현재는 아악·속악 등 두루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보편화 되었다. 해금은 고려 고종조(高宗朝) 이전에 우리나라로 들어와서 사용되었음이 분명하다. 한림(翰林)의 제유(諸儒)들이 지은 노래 중에 ‘이 악기가 보인다’는 가사는 벌써 그 이전부터 이 악기가 고려에서 사용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우리나라에 해금이 들어 온 시기는 최소한 고려 고종을 기준으로 하며, 또는 그 이전의 시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이후 ‘혜금(?琴)’이 아닌 ‘해금(奚琴)’이라는 글자로 표현되었고 우리나라에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종실록(世宗實錄)』 귄 132 ‘오례가례서열(五禮嘉禮序列) 악기편’에서부터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림만이 나오고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러나 『악현조예(樂懸朝禮)』에 나오는 고취조(鼓吹條)의 악기편성도로 보아 해금이 당시 사용되었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의 해금은 현재와 조금 다르다. 즉 입죽(立竹)의 위 끝부분이 현재의 해금과 다르게 반대방향으로 굽어지고 있다. 입죽의 끝이 반대로 되어 있는 것은 『악서(樂書)』, 『악학궤범(樂學軌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악학궤범』이 발간된 당시에는 줄을 당기지 않고 연주하였으나, 그 뒤 줄을 당겨 연주하게 되었으며, 조선왕조 중엽 이후로 연주 기법상 크게 발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칠현악기이면서도 관악기와 공통점 많아

해금은 찰현악기(擦絃樂器, 활로 현을 마찰해서 소리를 내는 악기의 총칭)에 속하며, 말총으로 만든 활을 사용한다. 공명통이 작아 코가 막힌 듯한 음색이 나므로 깡깡이 또는 깡깽이라고도 불리며, 휴대하기에 간편하여 유랑 연예인들이 애용하기도 하였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앵금이라고도 불린다. 동양 문화권의 현악기 대부분이 줄을 뜯어 연주하는 발현악기인 관계로 소리의 장시간 지속이 어려운데 비하여, 해금은 그 소리를 길게 끌어 연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악기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또 호흡의 한계성을 지니고 있는 관악기들의 합주에 함께 섞여, 숨쉬는 부분의 음향적 공백을 메워 줄 수 있다는 장점 덕택에 관악합주에 반드시 편성된다. 이런 까닭에 해금을 관악기로 취급하는 경향도 있다. 해금의 몸체에서 중요한 부분인 통은 화리(華梨)나 산유자나무로 만들기도 하였으나 최근에는 대나무 뿌리를 10센티미터 정도의 길이로 잘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굵은 대나무 뿌리를 잘라 모양을 다듬고, 그 한쪽에 얇게 깎은 오동나무로 복판(腹板)을 만들어 붙인다. 그리고 몸통을 뉘어 놓고 그 위에 검은 색의 대나무 오반죽(烏班竹)을 세우는데, 그 속에는 쇠기둥을 박아 몸통에 고정시키도록 되어 있다. 이것을 입죽(立竹)이라 하는데, 그 길이는 70센티미터 정도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약간 구부러진 모양을 취하고 있다. 입죽의 윗부분에는 줄을 감아 고정시키는 두 개의 주아(周兒)를 꽂는데, 모두 나무로 만든다. 명주실을 꼬아 만든 두 가닥의 해금 줄을 주아에 감아 놓고, 그 한쪽 끝은 공명통의 아래에 고정시킨 다음, 공명통의 중심부에 원산(遠山)이라 불리는 줄 버팀목을 세워 줄을 고인다. 원산은 바가지를 깎아 만드는데 원산의 위치에 따라 악기의 음량에 변화가 있다. 따라서 실내악과 같이 작은 음량이 필요한 경우는 원산을 복판의 가장자리에 놓고, 합주곡에서와 같이 큰 음량이 필요한 경우는 원산을 복판의 중앙에 세운다. 해금의 활은 말총으로 만드는데, 여러 가닥의 말총을 해죽(海竹)이나 오죽(烏竹)에 묶은 다음, 송진을 고루 발라 사용한다. 서양 현악기의 활은 말총의 한 면만 줄에 닿게 되나 해금은 두 줄 사이로 말총을 넣어 활의 앞뒷면을 모두 사용하는 점이 다르다. 해금은 예로부터 금·석·사·죽·포·토·혁·목의 여덟 가지 재료로 만들어져 왔다.

정확한 음정, 자유로운 전조 등으로 각광받아

전통음악에 있어서 해금은 어떤 형태의 연주에도 빠지지 않는 필수적인 악기이다. 관악합주, 관현합주, 세악합주, 대풍류 등에서는 물론이거니와 현악기만으로 이루어진 합주에서도 해금을 사용하곤 한다. 이러한 해금은 창작 국악관현악이 만들어지고 연주되어지면서 그 역할이 더욱 커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과거의 전통음악이 관악기 위주의 단선율로 진행되는 음악이었다면, 요즘에는 다분히 서양음악의 영향을 받은 작곡기법이 도입되면서 단선율적인 진행보다는 화성적인 면을 많이 강조하는 듯한 창작 국악곡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서양적인 어법의 사용과 함께 국악적인 색채를 보여 주고 싶어 하는 작곡가들은 정확한 음정을 만들 수 있고, 자유로이 전조(轉調)할 수 있으면서도, 표현에 있어서 다른 악기들보다 어느 정도 자유로운 해금에 많은 비중을 두게 되었다. 또한 중간 음역대의 악기가 주를 이루는 국악기 분포를 볼 때 고음역에 속하는 해금은 관현악에서 주제된 선율을 연주하기에 최상의 조건을 갖추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해금은 서양의 오케스트라와 비교할 때 바이올린에 해당하는 악기라 할 수 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등의 찰현악기들은 주선율과 대선율, 그리고 화성적인 부분을 연주함으로써 음악의 주제와 함께 전체적인 볼륨감을 풍성하게 한다. 국악기에서 찰현악기는 해금과 아쟁이 유일한데, 아쟁은 첼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저음부의 화성을 담당하여 앙상블의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해금의 역할은 더더욱 중요하다. 바이올린과 비올라처럼 중음역대와 고음역대의 성부를 담당하여 주제선율과 대선율, 혹은 화성적인 부분까지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금의 날카롭고도 명확한 고음처리는 주제선율의 전달에 있어서 매우 효과적이며, 음의 끊김이 없기 때문에 지속적인 화성의 연결이 가능하다. 또한 활의 움직임으로 강약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세밀한 표현에서부터 강렬한 음량까지의 조절이 가능하다.

과감히 변화된 개량해금

1960년대 이래로 다양한 패턴의 창작 국악이 발표되었고, 전통해금의 연주법과 음색, 표현력만으로는 이를 소화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한 연주자들은 전통해금의 특징과 장점은 그대고 갖고 있으면서도 좀 더 폭넓은 연주가 가능한 해금을 만들기 위해 개량작업에 착수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1993년 악기 개량사업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총 3차의 걸친 수정작업을 거쳐 현재의 개량해금을 탄생시켰다. 완성된 개량해금이라고 하기에는 보완해야 할 점들이 아직 많이 있지만 여러 차례의 실연을 통해서 앞으로의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기존의 국악기의 개량사업이 소극적인 개량, 즉 악기의 형태와 음색을 유지하면서 울림의 확대와 더 폭넓은 음역을 갖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면 국립국악관현악단은 해금개량 사업에 있어서 음색의 변화와 악기구조의 변화, 연주법의 변화까지도 과감히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새로운 창작음악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해 왔던 국립국악관현악단 연주자들의 필요에 의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전통해금 전통해금

개량해금

전통해금에서 개량된 부분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기존의 명주실이 과감히 쇠줄로 교체되었다. 쇠줄을 사용함으로써 명주실을 사용할 때의 약간은 거친듯하면서 날카로웠던 음색이 부드럽고 풍성하게 되었다. 둘째, 연주법의 변화이다. 전통해금은 줄을 안으로 잡아당기면서 음을 만들어내고 농현 등의 효과를 표현하는 역안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정확한 음정을 만들어내는데 상당한 부담을 가져야 했으며 빠르게 선율이 진행하는 경우에는 정확한 음정이 더욱 어려워지고 어색해지는 단점이 있었다. 이런 부분의 개선을 위해서 경안법을 채택하였다. 즉 줄을 잡아당기지 않고 음정의 거리에 따라 손가락 끝부분으로 넓게 혹은 좁게 짚으면서 음을 만드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따라서 음정을 정확하게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셋째, 울림통을 교체했다. 나무로만 되었던 울림통에 가죽과 나무를 함께 사용함으로써 음의 공명과 울림을 증대시켰고 동시에 부드러운 음색이 가능해졌다. 이밖에도 활대의 변화, 주아(조임목)의 변화, 개방현의 사용 등을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개량으로 해금은 다른 악기군과의 앙상블에서 상당히 향상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며, 국악관현악 전체로 보았을 때는 조금 더 다양한 연주가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통해금 연주자들이 새로운 연주법에 적응하고 숙련되는 데에는 시간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전통음악의 특징적인 부분, 즉 굵은 농현, 퇴성, 전성 등을 표현하기에는 개량해금이 아직까지 용이하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것은 앞으로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연구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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