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은 오는 5월 2일(금)부터 5월 4일(일)까지 해외초청작 <사랑의 죽음. 피비린내가 떠나지 않아. 후안 벨몬테(Liebestod. El olor a sangre no se me quita de los ojos. Juan Belmonte)>(이하 <사랑의 죽음>)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유럽 연극계에서 새로운 연극의 역사를 쓰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예술가 안헬리카 리델(Angélica Liddell)의 첫 번째 내한 작품이다.
스페인 출신의 작가이자 연출가, 배우 등으로 활동하는 전방위 예술가 리델은 강력하고 도전적인 연극을 만들며 세계무대에서 주목받아 왔다. 아비뇽 페스티벌에 9편 이상의 작품을 선보이기도 한 그녀는 베니스 비엔날레 연극 부문 은사자상 수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며, 1993년 아트라 빌리스 컴퍼니(Atra Bilis)를 창설해 30년 넘게 꾸준히 창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리델의 연극은 인간의 위선과 합리적 이성의 질서를 강하게 비판하며 존재의 본질을 깊이 탐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파격적인 미장센, 가톨릭 신비주의와 결합한 자기희생적 퍼포먼스는 관객들에게 불편함과 충격을 유발하며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직면하게 만든다.
<사랑의 죽음>은 벨기에 엔티겐트(NTGent) 극장 상주 예술가이자 연출가 밀로 라우가 기획한 ‘연극의 역사(Histoire(s) du Theatre)’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으로, 2021년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됐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를 스페인의 전설적인 투우사 후안 벨몬테의 서사와 병치하며 연극의 기원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투우사 후안 벨몬테(1892~1962)는 ‘영적 투우’의 창시자로, 투우를 예술을 넘어선 영적 수행으로 여긴 인물이다. 리델은 “후안 벨몬테가 투우를 하듯, 나도 연극을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번 작품을 “사랑에 빠진 불멸의 여인이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는 희생제”라고 설명한다. 자신의 예술 행위를 목숨을 건 투우와 비극적인 사랑에 비유하며, 동시에 영성과 초월성을 잃어버린 현대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제목에 등장하는 ‘피비린내가 눈을 떠나지 않아’는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이 고대 그리스 비극 시인 아이스킬로스의 한 시행을 변형해 자주 사용했던 문구에서 차용한 것이다. 잔혹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비판적인 메시지를 작품에 담아내려는 리델의 예술 철학이 담겨있다. 또한 루마니아 철학자 에밀 치오란,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 등 다양한 예술가들과의 대화와 텍스트를 무대 위로 끌어올려 예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현대미술을 연상케 하는 강렬한 미장센 또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노란빛의 광활한 투우장을 연상시키는 무대 위에는 거대한 황소 오브제와 소의 사체 등 전위적인 시각 요소들이 등장하며,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자아낸다. 작품을 구성하는 상징적 요소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리델의 신념을 담은 상징물로서, 작품의 중심 주제인 ‘죽음’을 표현한다. 오페라와 대중음악 등 강렬한 배경음악 또한 관객의 청각을 자극하며 몰입감을 더한다.
리델은 “나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과 명예가 아니라 오직 관객이며, 그것이 내 인생의 구원”이라며, “관객이 작품을 받아들이고 그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나는 엄청난 만족감을 느낄 것”이라고 전했다.
작품은 스페인어로 공연되며 한국어 자막이 제공된다. 5월 3일(토) 공연 종료 후에는 작품의 프로듀서이자 출연배우인 구메르신도 푸체(Gumersindo Puche)와 출연배우 파트리스 르 루직(Patrice Le Rouzic)과 함께 작품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마련된다. 20세 이상 관람가(2006년 12월 31일 이후 출생) 예매·문의 국립극장 홈페이지(www.ntok.go.kr) 또는 전화(02-2280-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