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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호 Vol. 346

밖에서 안으로

세계무대┃우간다 연극예술가 아동 루시 주디스의 국제적 행보

우간다 연극이 변화하고 있다.

아동 루시 주디스의 행보를 통해 우간다 연극의 내일을 살펴본다.

 

 


극작가·연출가·제작자이자 사회활동가인 아동 루시 주디스(Adong Lucy Judith)는 최근 우간다 연극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2012년에 우간다 국립극장에서 올린 데뷔작 ‘침묵의 목소리들(Silent Voices)’은 긴 독재정권의 여파로 위축된 정치 연극의 부활을 이뤄냈다. 한편 국내의 사회문제를 다루기 위해 국제적인 우회로를 택한 그녀의 행보가 공연의 메시지 못지않게 돋보인다.


우간다 연극은 그렇게 변하고 있다. ‘침묵의 목소리들’은 우간다 북부에서 30년간 벌어진 내전의 정신적 후유증을 소재로 삼는다. 정부는 LRA(Lord’s Resistance Army) 반군과 평화 협정을 맺으면서 반군의 지도부에게 상당한 특혜와 보상을 줬다. 하지만 반군에게 납치돼 소년병과 성노예로 살아야 했던 아이들에게는 가해자를 용서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아동 루시 주디스는 피해자 증언과 취재를 토대로 박탈감과 복수심에 괴로워하는 한 피해 여성이 반군 간부의 어린 자식을 살해하는 이야기를 구성한다. 이를 통해 우간다에 여전히 남아 있는 내전의 상처를 드러내고 어루만진다.


작품이 현 정권의 정책에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아동은 처음에 함께 일할 제작사나 극장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선댄스 협회(Sundance Institute)에서 출범한 동아프리카 연극 개발 프로그램에 선발돼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기 시작한다. 이를 계기로 캄팔라에 위치한 국립극장에서 마침내 정식 공연을 할 수 있었지만, 개막을 앞두고 아동은 체포까지 각오하며 변호사 팀을 대동한 채 극장에서 대기해야만 했다. 대중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만석인데도 공연을 보기 위해 밀고 들어오는 인파에 국립극장 역사상 처음으로 정문을 걸어 잠가야 했다. ‘침묵의 목소리들’은 2015년에 다시 국립극장 무대에 올랐다. 이번에는 우간다 북부에 거주하며 내전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아촐리족의 언어로 작품을 번역해 당사자들에게 더욱 직접적으로 다가갔다.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 찾기
권력을 압박하고 감시하기 위해 사회 운동가들이 국제사회에 기대는 것처럼 아동은 북미와 유럽의 작품 개발 프로그램에 힘입어 소외된 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왔다. ‘침묵의 목소리들’ 다음으로 집필한 작품 ‘오직 나, 당신 그리고 침묵(Just Me, You and the Silence)’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이 작품은 2009년에 발의됐다가 가까스로 무산된 ‘동성애자 죽이기’ 법안을 다룬다. 우간다의 모든 성소수자를 사형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 법안의 통과를 막기 위해 인권 운동가들은 시위를 벌인다. 이들은 신분이 노출될 위험 때문에 종이가면을 쓰고 거리로 나온다. 그런 와중에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의 아들이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해 여론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비록 극 중 이름은 다르지만 이 작품의 줄거리는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것이다. 2017년에 초연한 이 작품은 우간다 연극 역사상 처음으로 동성애 커플을 무대에 올리는 성과를 이뤘다. 정부와 보수 종교계에서 쏟아내는 과격한 동성애 혐오 선전물에 대항해 우간다에 사는 게이와 레즈비언들의 일상생활과 감정, 기쁨과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극 중에서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들은 비폭력 저항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 한 명은 아무리 상대편에서 싸움을 걸어와도 평화 시위를 계속해야 국제 사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다른 한쪽에서는 아프리카 근현대사에서 숱하게 벌어진 내전과 학살, 인권 탄압에 대해 서구가 과연 무얼 해줬는지 물으며 회의감을 드러낸다.


아동은 작품을 통해 국제 사회의 역할에 대한 상반된 관점을 지닌 이들을 중재하려 애쓴다. ‘오직 나, 당신 그리고 침묵’은 런던 로열 코트 극장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개발됐다. 이후 이 작품은 런던의 올드 빅, 뉴욕의 퍼블릭 시어터, 토론토의 IFT(Islamic Foundation of Toronto) 같은 저명한 극장에서 독회를 진행했고, 아동은 현지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우간다 인권 문제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그녀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많은 반대와 비판을 무릅쓰며 국내에서 연극을 제작하려 애썼다. 우간다 국민이 이 작품을 보고 동성애자를 동등하게 대하기 시작해야만 글을 쓴 의미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침묵의 목소리들’과 ‘오직 나, 당신 그리고 침묵’ 모두 권력의 만행과 사회적 약자에 가해지는 탄압을 다룬다. 더불어 우간다 기득권층이 기독교 교리를 어떻게 왜곡해 사회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하는지도 보여준다. 아동은 2016년 초연한 연극 ‘가-앗!Ga-AD!’에서 종교계의 문제를 한층 직접적으로 다룬다.


이 연극은 아프리카 오순절 교회 내 여성들의 다양한 경험을 시로 표현한 베벌리 남보조 은센기윤바(Beverley Nambozo Nsengiyunva)의 시 ‘가장 외로운 여정은 충실한 여자의 여정이다’를 극화한 것이다. ‘믿음(Faith)’이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여자가 주인공인데, 그녀는 카리스마 넘치는 목사 예레미야의 비서로 일하면서 부흥한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부패와 비리를 목격한다. 예레미야 목사는 교회를 물려줄 아들이 없어 고민하다가 마침내 가정부를 임신시켜 첩으로 맞이한다. 그런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하는 목사 부인의 고통을 알아줄 사람은 ‘믿음’밖에 없다.


이 연극의 제목은 또 다른 관점에서 우간다와 서구의 관계를 함축한다. 우간다에서는 영어 단어 ‘God’을 ‘곳’이라고 발음한다. 하지만 우간다 오순절 교회의 목사들은 미국 남부 대형 교회와 스타 목사들의 설교 스타일을 모방해 과장된 미국식 억양으로, 즉 ‘가-앗’이라고 발음하기를 좋아한다. 아동은 두 발음의 차이를 이용해 진정한 신념과 신념을 가장한 사리사욕 추구를 명확하게 구분한다. 더 나아가 잘못된 믿음의 양상을 미국식 영어 발음으로 상징화한 데에서 서구의 선교 활동과 식민 지배 역사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암시하기도 한다.

 

 

지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
외국인의 시각에서 아동의 작품을 보면 우간다 사회와 풍습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특히 ‘침묵의 목소리들’에서는 아촐리족의 전통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아동의 연극이 해외에서 주목받는 데는 이 같은 상호문화주의적 경향성을 단연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문화교류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약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을 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 세계로 진출한다. 즉, 아동은 다양한 국제 플랫폼을 활용해서 국내의 사회·정치적 한계를 극복할 줄 아는 새로운 형식의 글로벌 예술가인 셈이다.


아동의 작품들이 국내외에서 파급력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감정적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아동은 기억과 트라우마, 내밀한 경험을 섬세하게 다루는 극작가다. 또한 음악과 시적 언어를 연극 안에 엮는 능력이 탁월하다. 무엇보다 참혹한 현실에 비관하지 않고 ‘사랑’과 ‘경청’의 원칙들을 토대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예술로 개척한다.


아동의 연극을 보면 한국 현대사의 장면들과 정서가 중첩될 때가 많다. ‘침묵의 목소리들’이 전하는 우간다 내전 피해자의 트라우마는 여순사건·제주 4.3사건 등 이념 전쟁에 희생된 민간인과 그들의 정신적 보상 문제를 연상케 한다. ‘오직 나, 당신 그리고 침묵’에서 이른바 ‘우리의 전통적 윤리관’을 근거로 성소수자의 인권을 짓밟는 대목이 낯설지만은 않다. 또한 ‘가-앗!’에서 다루는 교회 내 부패와 세습 문제는 상당 부분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연극은 어쩔 수 없이 지역주의적인 예술이라는 편견이 있다. 출판물이나 영상 매체와 달리 같은 시공간에서 관객을 직접 만나야 하는 한편, 음악이나 무용과 달리 언어 장벽까지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동의 작품과 국제 활동을 보면 지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 나아가 국내의 어려운 실정을 해외 활동으로 극복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하기도 한다. 분명한 사회적 의식을 가지고 공감대의 지평을 세계로 넓히면 불가능한 줄 알았던 것도 가능하게 된다. 우간다 연극은 그렇게 변화하고 있다.

 

남기윤 일리노이 주립대학교 연극무용학과 조교수. 미국과 한국에서 연극학자·번역가·드라마투르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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