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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호 Vol.348

'한국적인 것'에 대한 색다른 해답

리뷰3┃국립무용단 '가무악칠채'

지금 ‘한국적인 춤’에 요구되는 것은 시대정신이 담긴 감각과 메시지다. 국립무용단의 ‘가무악칠채’는 익숙한 장르를 자유롭게 변형함으로써 ‘동시대 예술’로서의 전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018년 11월 22~24일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오랫동안 ‘한국적인 것’은 곧바로 ‘전통적인 것’을 호출하는 표현이었다. 물론 전통이 ‘한국적인 것’의 충분조건일 수는 있으나, 현대의 ‘한국적인 것’을 담아내는 데는 부족함이 있다. 최근 국립무용단의 파격 행보 역시 이런 정체성의 동시대성을 획득하려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한국적인 것’의 개념을 쇄신하려면 편향된 인식의 탈피와 함께 전통과 현대성을 아우르는 통찰, 그리고 상상력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한국적인 춤’에 요구되는 것은 더 이상 전통적 서사나 주제·의상·국악기·판소리 같은 매체 자체가 아니다. 그것을 통해 현대의 관객과 ‘해설 없이’ 만날 수 있는, 시대정신이 담긴 감각과 메시지다.


이재화가 2018년 3월 국립무용단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넥스트 스텝I’에서 야심만만하게 꺼내든 무기는 ‘가·무·악’과 ‘칠채’였다. 춤 공연에서 보기 어려운 칠채 장단을 전방에 내세운 것만으로도 기대감을 자극했다. 이재화가 마련한 그 ‘이상한 만남’은 기대에 십분 부응하며 호평을 이끌어냈다. 이번 레퍼토리 공연이 기존 30분짜리 초연의 확장 버전인 만큼, 인상적인 소품 같던 기존 작품을 어떤 디테일로 업그레이드했는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초연과 이번 공연 공히 ‘가무악칠채’는 웃다리농악을 대표하는 장단인 ‘칠채’를 춤과 음악, 판소리로 다양하게 변주해 우리 춤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는 무대다. 공연의 큰 뼈대는 가·무·악이지만, 그 사이를 메워주는 것은 칠채 장단이다. 농악에서 쓰이는 빠르고 현란한 이 장단은 정중동의 에너지에서 여운을 뽑아내는 한국춤의 상성에서 의구심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이 장단에 어울리는 춤과 소리라면 차라리 힙합의 스트리트 댄스나 래퍼들의 랩이 적합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대중음악에서 종종 그런 시도가 있기도 했다.


이재화의 색다른 접근법은 이 지점에서 도드라진다. ‘가무악칠채’의 ‘칠채’는 연주 파트에서 전유하는 농악 장단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재화는 장구·징·해금·아쟁 같은 국악기뿐만 아니라 기타·드럼·베이스기타·신시사이저 같은 서양 악기도 편성에 넣어 칠채 장단을 새로운 감각으로 재해석한다. 아울러 소리꾼과 춤꾼은 각각 소리와 움직임으로 칠채 장단을 표현한다. 즉 ‘가무악칠채’는 단순히 이질적인 전통 장르 간의 결합이 아니라, 이를 자유롭게 변형함으로써 얼마든지 활용 가능한 ‘동시대 예술’로서 전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실험인 셈이다.

 

새로운 가무악을 위한 칠채 엔진의 위력
무대 위에 캐주얼한 복장의 무용수들이 등장한다. ‘넥스트 스텝I’에서 칠채 엔진의 위력을 이재화 자신을 포함해 국립무용단원 송설·조용진·박혜지·조승열의 다섯 무용수로 실험했다면, 이번에는 황태인과 이요음이 가세해 일곱 명의 연주자와 수를 맞췄다. 이들이 보여주는 움직임은 기묘하다. 통일성 없는 자유분방한 동작은 의도적인 불협화음처럼 느껴진다. ‘가무악칠채’는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칠채 장단과 일곱 가지 악기의 각양각색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려낸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빠르면서 역동적인 각각의 춤은 무대 위에서 연주되는 악기의 면면을 표현한다. 물론 그 자체만으로 장단이 춤으로 옮겨지기는 순조롭지 않다. 음악을 닮은 춤, 다시 그 춤을 닮은 음악이 서서히 호흡을 맞추며 칠채화된 가·무·악의 밑그림을 그린다.


‘가무악칠채’가 ‘칠채 볼레로’로 불릴 수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이재화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칠채 장단의 가무악적 표현이라는 테마를 고수한다. 그 결과 흥미로운 매체를 활용해도 그 특이성에 침식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서두에 등장하는 루프스테이션과 중후반부 등장하는 레이저 오선지(실제 5선은 아니다)다. 우선 루프스테이션을 등장시켜 여러 악기의 소리를 중첩시키는 장면을 관객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가무악칠채’가 칠채라는 음악을 다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작품이라고 선언하는 것 같다. 중후반부의 레이저 오선지 역시 스펙터클의 유혹에 빠질 수 있는 매력적인 미장센을 선사하지만, 이 역시 칠채라는 박자의 영역 안으로 제한된다.


악과 무가 출현한 가운데 마지막으로 국립창극단원 김준수의 소리가 등장하면 새로운 가·무·악의 실험은 비로소 완전한 진용을 갖춘다. 그가 들려주는 소리 역시 앞서 나온 춤처럼 기존 양상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하지만 체화된 한국춤과 소리의 내공은 이들의 색다른 움직임과 대사에서도 여전히 뿜어져 나온다. 김준수가 주문처럼 반복하는 ‘원투스리 원투’에 맞춘 무용수들의 몸짓에 객석의 반응은 뜨겁게 달아오른다. 이로써 한국춤에 대한 인식은 벌써 회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가무악칠채’는 일정한 박자에 움직임을 녹여내는 기존 한국춤과 달리 불규칙한 박자에 가·무·악을 일체화하는 형식이다. 숫자를 따라 세듯 가·무·악이 모두 합일되는 순간, 카운트 강박이 쌓여가며 또 하나의 새로운 리듬을 만든다. 그렇게 가·무·악이 융합돼 혼연일체가 되는 순간은 EDM에 맞춰 몰아의 춤을 추는 클럽 안 풍경을 연상시킨다. ‘가·무·악’과 ‘칠채’라는 예스러운 예술이 젊은 세대의 감성과 통할 수 있는 장면이다.


이 과정에서 가·무·악의 주도권 다툼도 흥미롭다. 이재화가 농악의 상쇠 노릇을 하며 무대의 움직임을 이끌지만, 어느새 김준수의 소리가 치고 나오며 순간순간 가·무·악의 힘겨루기가 펼쳐진다. 이 에너지의 파장을 유유히 흐르는 것은 물론 칠채 장단이다. ‘가무악칠채’는 동시에 새로운 가·무·악 퍼포먼스를 위해 칠채 장단을 엔진화한 거대한 장치 같기도 하다.

 


어둠 속에서 등장한 레이저 오선지 사이로 붉은 슈트를 입은 춤꾼들이 선 사이를 누비는 장면은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다. 각자의 악기에 맞춰 음표화된 춤꾼들이 칠채 리듬과 호흡을 같이하며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은 마치 경쾌한 사물놀이 리듬을 귀로 들을 때 떠오르던 무형의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형상화한 것 같다. 처음의 불협화음 같은 움직임 대신 어느새 복잡한 변박을 갖고 노는 이들의 몸놀림은 동중동動中動을 통해 한국춤의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한다. 또 그 순간 무대 위를 흐르는 가·무·악은 고루한 전통의 유산이 아닌, 온전히 지금의 ‘한국적인 것’이 된다.

 

전통의 탐구와 현대의 시각이라는 양날개
‘가무악칠채’는 다른 한국춤이나 전통 예술과 달리 사전 지식이 그리 중요치 않다는 점에서 일반 관객의 진입 장벽이 낮은 작품이다. 물론 칠채 장단의 특성을 알고 봐도 좋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작품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비트와 움직임을 통해 관객이 자연스레 ‘칠채 장단’을 체화하게 한다. 명절에만 접할 수 있는 고색창연한 전통이 아닌, 동시대 예술로서 칠채 비트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런 결과를 도출하기까지의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정해진 리듬과 호흡의 세계에서 살아온 춤꾼들이 불규칙한 리듬에 맞춰 새로운 움직임으로 조화를 이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춤꾼뿐만 아니라 소리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지나치게 정직한 제목과 달리 ‘가무악칠채’는 젊은 세대가 바라보는 전통예술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통예술이 무겁고 근엄한 주제나 형식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유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는 가·무·악에 비해 상대적으로 창작 춤에서 한 발짝 비켜 있었던 떠들썩하고 경쾌한 ‘놀이’의 감성과도 연결된다. ‘가무악칠채’가 남녀노소 다양한 관객의 환호를 이끌어냈다면, 그것은 놀이로서의 감성 덕분일 것이다. 놀이는 과거와 현재를 쉽게 만나게 하는 불변의 시대정신이다.


지난 몇 년간 국립무용단은 ‘전통의 현대화’라는 취지 아래 타 장르, 해외 안무가나 연출가와 협업하며 한국춤의 외연을 넓히는 실험을 계속해왔다. 이 과정에서 호평도 많았지만 기존 한국춤과 무용단의 정체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단체의 방향성과 새로운 정체성 정립을 위해 응당 거쳐야 할 단계다. 문제는 이런 ‘현대화’를 목표로 한 확장의 과정 못지않게 ‘전통’에 대한 창의적인 성찰과 고민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결국 이 시대의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창작이란, ‘한국적인 것’에 대한 다각도의 흥미로운 탐구의 결과물이 될 것이다.


이번 공연은 관습적으로 낡고 고루하다고 느껴오던 전통의 창고에서 얻어낸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통’이라는 뿌리와 ‘현대’라는 감성은 더 이상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몸 안에서 융합되는 요소다. 이를 화학적으로 매개하는 것은 관습을 깨는 상상력이다. 칠채 장단과 우리 춤은 섞일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간단히 파훼되면서 파생된 시너지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원색의 레이저 오선지를 춤으로 수놓은 일곱 개의 음표, 이들 ‘몸의 연주자’들이 그려낸 무대는 세대를 아울러 영감을 자극하는 미장센이었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을 결합해 새것을 ‘발명’하는 것만이 좋은 창작의 정답은 아니다. 익숙한 것과 익숙한 것 사이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면이 아직 남아 있다. ‘가무악칠채’는 전통예술에서도 여전히 그런 발견의 재미가 있다는 것을 웅변하는 무대였다. 또한 아직 발견되지 않은 흥미로운 변주의 씨앗들이 전통의 창고에 남아 있음을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이재화의 의도대로 칠채는 이 공연을 통해 현재의 리듬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혁신적인 개전(開展)을 목표로 달리고 있는 국립무용단의 계획 또한 한층 더 견고해졌다.
 
송준호 공연 저널리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에서 무용미학을 전공하고 ‘주간한국’과 ‘한국일보’ ‘더뮤지컬’을 거쳤다. 공연예술의 다양한 변화를 주시하며 대학에서 춤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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