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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호 Vol.348

도시라는 이름의 축제

세계무대┃'도쿄예술제 2018'과 도쿄예술극장

축제의 나라에서 열리는 예술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한 도시의 축제에서 세계의 문화·예술제로 성장한 ‘도쿄예술제 2018’을 만나보자.


‘찾아가는 공간’으로의 축제
도쿄 이케부쿠로역 서쪽 출구의 백화점과 상점이 즐비한 번화가 한복판에는 전면 유리로 감싸인 기하학적이고 모던한 스타일의 건물이 우뚝 서 있다. 이곳 도쿄예술극장을 중심으로 2018년 9월 1일부터 12월 9일까지 100일에 걸쳐 ‘도쿄예술제 2018’(이하 예술제)이라는 ‘도시형 문화예술축제’가 진행됐다. 이 행사는 일본문화청과 도시마구(豊島: 일본 도쿄의 행정구역)의 국제 문화예술도시 추진 사업의 일환이다.


2018년 3년째를 맞이한 예술제는 총 36편의 작품을 준비했다. 한층 효율적이고 풍부한 축제를 위해 종래에 실시해온 네 분야의 무대예술 사업을 ‘도쿄예술제 2018’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은 것이 특징이다. 세계 각국의 동시대 아티스트와 작품을 조명하는 국제공연예술축제로, 2009년부터 11회째 개최되는 ‘페스티벌/도쿄2018’, 도쿄예술극장 주최 사업 가운데 화제가 된 국내외 작품을 모아놓은 ‘어텀셀렉션(Autumn Selection)’, 2019년 동아시아문화도시로 선정된 도시마구가 국제아트도시를 목표로 일본의 전통예능 및 현대무용 신작을 발표하는 ‘국제아트·컬처도시’, 2002년 개시한 ‘아시아무대예술제’의 전신으로, 아시아의 젊은 아티스트들을 선발해 국경을 초월한 공동 창작과 국제 네트워크 확산을 위한 육성 프로그램인 ‘APAF-아시아무대예술인재육성부문’이 본 페스티벌의 전체 구성이다.


예술제 종합 디렉터 미야기 사토시는 ‘열린(ひらく)’ ‘최선의(きわめる)’ ‘맺음(つながる)’이라는 세 가지 콘셉트로 이뤄진 본행사에서 극장 무대가 아닌 일반 시민이 자유로이 오가며 활기를 띠는 장소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는 일반 관객의 접근성을 고려한 것으로, 이번 ‘도쿄예술제 2018’에서는 도쿄예술극장뿐만 아니라 도시마 구립 무대예술 교류 센터 아울스폿, 나가노현에 위치한 절 사이호지, 도시마 구립 전통 정원인 메지로 정원의 세키초안 등 한 곳에 집중하지 않고 곳곳에 거리 공연을 배치해, 그곳을 지나치는 시민들이 언제든 공연 ‘안쪽’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일상적 참여를 유도했다.

 

극장, 사람을 품는 공간
예술제의 공연 공간 중에서도 중심이 된 도쿄예술극장은 1990년 10월에 개관, 2012년에 리뉴얼 오픈으로 재탄생해 2018년 개관 28주년을 맞이한 도쿄의 공공 극장이다. 1969년에 처음 나라로부터 문화체육시설 용도로 부지를 취득하고, ‘도쿄 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으로 일대의 시설 개발에 착수한 끝에 완성됐다. 현재는 도쿄를 대표하는 예술문화 공간이자 이케부쿠로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파이프오르간을 보유한 오케스트라와 콘서트홀 전용의 대극장, 연극·무용을 중심으로 하는 중극장, 각기 동과 서를 대표하는 두 소극장을 비롯해 그 외 전시나 강연·워크숍·연습 등이 가능한 갤러리와 리허설 공간…. 갖춘 시설만 봐도 하루에 수차례의 공연이 올라가는 복합적인 문화 교류 공간임에 틀림없다. 지하철역과도 연결돼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월 1~2회 휴무 외에는 상시 오픈된 카페·우체국·기프트숍 등 각종 부대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수직으로 펼쳐지는 적층형 내부는 네 개의 메인 극장을 축으로 해 위아래로 관통하게 만들어졌다. 쾌적함과 개방감을 조성하면서 제한된 부지 안에 여러 시설을 마련하기 위한 고민 끝에 탄생한 건축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번 예술제에서는 화려한 극장 자체보다는 극장 주위를 둘러싼 이케부쿠로 서쪽 출구 공원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일본인들에게는 이시다 이라의 추리소설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로 친숙한 장소다. 이곳 역시 개발 단계에서 재정비됐으며 주로 중고 책 장터나 프리마켓으로, 시민의 한적한 휴식 공간이나 기다림의 장소로 사용된다. 거목이나 잔디로 푸르기만 한 공원이 아닌 누구나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공공장소’에 가깝다.

 

‘일상’과 ‘비非일상’의 경계에서
예술제의 라인업을 살펴보면 ‘안’뿐만 아니라 ‘밖’과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음을 몇몇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호주 백투백 시어터의 ‘Small Metal Objects’가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극장 앞 공원에서 점심때 공연한다. 지적장애를 가진 배우들이 광장 한가운데를 오가며 사건에 휘말리고 관객은 야외 스테이지 객석에서 사전에 받은 작은 이어폰을 통해 대화를 엿들으면서 그들을 지켜본다. 주목할 점은, 관객이 아닌 반대편 거리를 오가는 여느 사람들이다. 무대와 일상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장소이기에 사전에 이러한 공연이 진행되는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해 배우들이 연기하는 ‘무대’ 한복판을 가로지르거나 큰 목소리로 전화를 하는 등 일상 그 자체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그곳을 지나치는 모든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공연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위 공연이 ‘낮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서푼짜리 오페라’는 ‘밤의 일상’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브레히트의 동명 희곡을 도시의 네온사인 불빛을 배경으로 공원의 끝과 끝을 뛰어다니는 야외 활극으로 변신시킨 것이다. 관객이 ‘떠들썩한 무언가’를 ‘우연히’ 발견할 수 있는 형태로, 야외무대 반대쪽 울타리를 없애고 ‘원 코인’인 500엔으로 입장료를 단일화했으며 멀리서 바라보는 한 무료 관람 또한 가능하다. 이탈리아 연출가 조르지오 바르베리오 코르세티가 직접 선발한 일본인 배우 15명은 라이브로 연주하는 반주 음악과 영상, 경쾌한 스토리 전개로 쌀쌀한 날씨에도 관객의 웃음과 주목을 끌어냈다.


예술제가 열리는 극장 ‘안쪽’ 역시 매진 행렬이 이어졌다. 도쿄예술극장의 대표적인 예술감독이자 노다맵의 대표인 노다 히데키의 ‘만개한 벚꽃 숲 아래(?の森の開の下)’는 일본의 대표 문학가 중 한 사람인 사카구치 안고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화려한 출연진과 무대미술을 자랑했으며, 관람권을 구매하기 위해 세 시간 이상 줄을 서야 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같은 장소에서 일본인이 사랑하는 극작가 중 한 명인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동물원’도 공연됐다. 프랑스 연출가이자 무대미술가인 다니엘 자네토우가 반투명한 실크 천 위에 기억을 풀어놓는 형식으로 미의 극치를 선보인 무대였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작품으로는 이란 출신 극작가 낫심 술리만푸어가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초면의 배우·관객과 공유하며 단 하나뿐인 기억을 만들어가는 ‘NASSIM’이 있다. 또 런던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세 명의 일본 무용수가 빛과 그림자를 이용, 들린다는 것에 대한 개념을 포착한 컨템퍼러리 무용 공연 ‘빛의 소리: 그림자의 소리-귀로만 들을 수 있는 걸까-’ 등 현재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의 공연 또한 축제에 활기를 더했다. 방글라데시 극단 꿈(Swapnadal)의 ‘30세기’, 일본 극단 제7극장과 대만 극단 셰익스피어의 자매들(Shakspeare’s Wild Sisters Group)이 영화 ‘카페 뤼미에르’(감독 허우 샤오시엔, 2003)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컬래버레이션 연극 ‘카페 뤼미에르’ 등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국제 교류의 장이 되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다.

 

 

 

지역과 관계 맺기
이케부쿠로(池袋)는 현대 문화예술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이름의 유래는 한자 고유명사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이 주머니처럼 생긴 분지 형태의 땅으로 과거에 연못이 많았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곳은 메이지유신 이후 교통 발달과 인구 유입으로 초반에는 문화교육도시로 얘기되었다가, 우에노의 도쿄미술학교(현 도쿄예술대학교 미술학부)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로 예술의 꿈을 좇는 청년들이 모여드는 ‘예술가 마을’로 입지를 굳힌다. 이를 시인 오구마 히데오가 파리의 몽파르나스 거리를 떠올리게 한다며 ‘이케부쿠로 몽파르나스’라 이름 붙였다. 이후 수많은 작가·화가·조각가가 이곳에서 배출됐고 도시마구의 문화 진흥 활동은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한편, 본격적으로 연극 문화가 싹트게 된 것은 전후 교외의 신흥 지역인 이케부쿠로 일대에 많은 영화관과 소극장이 들어서면서부터다. 가라 주로·데라야마 슈지 등 1세대 연극인에 의해 시작된 1960년대 일본의 소극장 운동(안그라 연극운동)은, 그 본거지인 와세다 소극장(현 SCOT) 일대에서 조금 떨어진 이케부쿠로에도 영향을 미쳤다. 1968년에 개장한 ‘이케부쿠로 아트 시어터(현 시어터 그린)’가 거점이 되어 작은 극단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1977년부터 도쿄도가 본격적으로 개입해 도쿄예술문화회관 건설을 계획하게 되는데 이는 훗날 도쿄예술극장의 출발점이 된다.

 

공간이 확보된 이후 1988년에 개최된 ‘도쿄국제연극제 ′88 이케부쿠로’는 오늘날 ‘페스티벌 도쿄’의 전신이다. 이듬해 1989년부터 실시된 ‘이케부쿠로 연극제’는 이번 예술제 프로그램에 속하며 제30회를 맞이했다. 9월 한 달에 걸쳐 일반 공모 제도를 통해 참가자와 심사위원을 선발해 총 51개 단체가 지역 내 17개 극장에서 각각 다른 공연을 선보였다. 나아가 2019년 1월 15일부터는 ‘제51회 도쿄도민예술 페스티벌’이 이케부쿠로·신주쿠 등지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케부쿠로가 문화예술 거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지역구와 주민에 의한 적극적 예술문화 활동이 큰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축제 현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문화예술을 가까이하지 않는 ‘주변부’ 사람까지 포섭하고 싶다는 디렉터의 바람이 완벽하게 실현됐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축제의 문턱을 낮춤으로써 되도록 많은 이에게 양질의 작품을 접촉시키고자 여러 장치를 마련했다는 것은 높이 살 만한 점이다.


일본은 1년 내내 전국에서 각기 다른 테마와 다양한 규모의 축제가 열리는 ‘축제의 나라’다. 그 칭호에 걸맞게 ‘도쿄예술제 2018’은 공공극장과 지역 간의 끊임없는 교류와 관심으로 빚어졌고 축제가 한 지역, 한 나라를 넘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2020년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을 앞두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수년 전부터 무수한 협의를 바탕으로 행사를 준비하는 가운데 문화예술 분야에서 거둔 이러한 성과는 지역과 시민들 간에 상호협력과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앞선 사례가 될 것이다.


참고문헌
‘도쿄예술극장 25년사東京芸術劇場の25年’, 도쿄역사문화재단 도쿄예술극장, 2016.
‘FESTIVAL/TOKYO 09:DOCUMENT’, 페스티벌/도쿄 실행위원회사무국, 2009.
‘도쿄 예술제2018’ 공식 홈페이지


김희진 희곡을 쓰며, 일본 니혼대학교 예술학연구과에서 무대예술을 공부하고 있다.
사진제공 도쿄예술제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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