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네비게이션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빠른예매 바로가기 사이트 지도 바로가기
월간미르 상세

2020년 11월호 Vol.370

‘칠채’의 화려한 변신

미리보기 둘 | 국립무용단 '가무악칠채'

 

방탄소년단 슈가가 부른 ‘대취타’가 빌보드 차트에 오르고, 홍대 클럽에서 판소리를 ‘떼창’하는 시대.
현대적이면서도 대중적인 한국무용이란 무엇인지, 그 해답을 ‘가무악칠채’에서 찾아본다



“현대적인 한국춤이란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얼마 전 한 신진 안무가가 털어놓은 고백이다. 한국무용 전공자로서 우리만의 정서와 무기를 살린 작품을 만들고 싶은데, 화려하고 자극적인 콘텐츠로만 관심이 쏠리는 이 시대에 대중을 사로잡을 방법을 모르겠다는 것이 그의 고민이었다. 문득 그 고민을 해결할 만한 무대로 ‘가무악칠채’가 떠올랐다. 이 작품은 2018년 초 국립무용단의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넥스트 스텝’을 통해 선보인 이재화 단원의 첫 안무작이다. ‘넥스트 스텝’은 당시 30분짜리로 연출됐으나 같이 공연된  작품 중 독보적인 호응을 얻으며 국립극장의 정식 레퍼토리로 선정됐고, 그해 말 2배 분량의 확장판으로 제작돼 큰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이번에 2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코로나19 사태로 2월부터 국립무용단의 모든 공연이 줄줄이 취소된 안타까운 상황에서 오랜만에 단체의 존재감을 드러낼 만한 공연이 등장한 것이다.


‘넥스트 스텝’은 국립무용단원들에게는 일종의 미션과 같았다. 전통을 기반으로 한국음악의 깊이를 녹여내 ‘한국무용가만의 현대화된 언어를 개척하라’는 것이 주된 요청이었다. 그간 한국무용가들을 바탕 삼고 현대무용의 문법으로 동시대성을 추구하려는 숱한 시도가 있었지만, 주목할 만한 성과는 보이지 않았다. 이재화는 무용 신scene에서 이제껏 사용한 적 없는 ‘칠채’라는 장단으로 과감하게 음악적 도전에 나섰다. 2018년 당시 ‘가무악칠채’ 개발 과정을 취재하며 ‘칠채’란 생소한 단어가 농악 길군악에 쓰이던 장단이란 말에 갸우뚱했던 기억이 난다. 왜 동래학춤, 한량무 같은 전통 춤사위 자체에서 모티프를 따지 않고, 굳이 춤의 배경이 되는 음악 장단을 내세웠을까. 그런 의구심은 무대를 보며 말끔히 씻겼다. 이 무대의 ‘상쇠’ 역할을 맡은 안무가 이재화가 장구도 치고 꽹과리도 치면서 음악의 기본 구조를 만들어내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2016년 국립무용단과 ‘시간의 나이’를 협업했던 프랑스 안무가 조세 몽탈보가 “한국무용수는 모두 음악가이기도 하다”라고 감탄하던 기억도 떠올랐다.

 

 

‘칠채’를 ‘가무악칠채’로 풀어내다
실제로 ‘가무악칠채’의 시작은 ‘시간의 나이’라고 볼 수 있다. 이재화 스스로 ‘시간의 나이’ 파리 공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몽탈보뿐만 아니라 당시 공연을 본 파리 관객들은 무용수가 악기까지 다루는 한국무용에 대해 경이로움을 표했다. 이재화는 ‘가무악일체’를 테마로 삼고 제목으로 내세웠다. 이는 ‘칠채’를 한국 전통 예능의 시그너처인 ‘가무악일체’로 풀어낸다는 일종의 선언과 같다. 혼자 가무악을 다 하는 전통적 개념을 거꾸로 풀어내 음악·무용·소리 전문가가 ‘칠채’라는 소재를 가·무·악으로 확장시키는 실험인 것이다.


왜 칠채일까. ‘칠채’는 농악에서 행진에 쓰는 빠르고 현란한 장단으로, 한 장단에 징을 일곱 번 친다는 뜻이다. 이재화는 프로젝트의 미션인 ‘전통춤의 현대화’를 실현하기 위한 실마리를 타악 비트에서 찾아냈다. 사실상 한국춤은 타악과 분리할 수 없기에 이 시도는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서양의 고전발레가 차이콥스키의 드라마틱한 선율에 맞춰 펼쳐지듯 한국무용은 남사당놀이패나 사물놀이패의 리듬 퍼포먼스와 짝을 이뤄야 역동적인 춤판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무가 이재화가 학창 시절 무용보다 사물놀이를 먼저 배우면서 터득한 장단이 ‘칠채’다.


푸른빛 조명이 지배하는 무대에 붉은 슈트를 입은 무용수들이 ‘칠채’ 장단을 수놓는다. 농악을 상쇠가 끌고 다니듯, 이재화와 소리꾼 김준수가 번갈아 상쇠가 돼 무대를 이끈다. 이재화가 루프스테이션을 이용해 직접 칠채 장단을 만들어내고, 김준수가 재담으로 이끌며 시작한 리듬놀이에 무용수들이 하나둘 끼어들어 제각각 호흡의 조화를 이루며 춤이 무르익는다. 칠채의 무한 변주를 펼친다는 점에서 가히 ‘칠채 볼레로’라고 할 수 있겠다. 모리스 베자르의 ‘볼레로’가 스네어 드럼에서 시작해 거대한 오케스트라 연주로 발전시키고, 라벨의 음악에 맞춰 솔로에서 스펙터클한 군무로 이행해 가듯, ‘가무악칠채’도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는 가장 단순한 소리와 동작으로 시작해 서서히 한국적 이미지를 증폭시켜 간다. 분명 한국적 DNA가 뚜렷한 전통 춤사위지만 빨라졌다 느려졌다 완급 조절의 변주가 반복되며 독특한 에너지를 연출한다. 


‘가무악칠채’의 백미는 군무다. 중반부 타악에 해금·대금 등 선율이 쌓이고 소리꾼의 구음까지 더해지면서 스펙터클한 군무의 향연은 보는 이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물론 ‘가무악칠채’는 ‘볼레로’의 빈틈없이 각 잡힌 군무와는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기본적인 동선은 있되 각각의 동작이 한결같지 않고 저마다 조금씩 어긋난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좌우대칭의 서양식 칼군무가 아니라 한 호흡 안에서 자유로움의 여지가 엿보인다. 슬쩍 찌그러진 달항아리의 미학에서 느껴지는 낭만적 정서가 담긴 군무라고나 할까.

 

 

‘전통’이라는 성벽을 넘어
무대가 중반으로 치달으면 본격적으로 ‘한국’이라는 틀을 벗어던진다. 건반 연주부터 시작해 가야금?해금 등의 현대적으로 변형된 연주와 태평소 가락을 더한 헤비메탈 비트의 사이키델릭한 음향으로 절정을 이루는 ‘칠채’의 막판 클라이맥스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레이저빔으로 오선지를 형상화한 무대에서 무용수들은 저마다 개성 있는 음표처럼 움직이는데, 오선지 간격이 넓어졌다 좁아졌다 무용수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템포를 반영한다. 그러다 사물놀이에서 보이는 절정의 순간처럼 빨라지더니 종국에는 하나의 선으로 모이며 칠채의 진수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마치 한국춤이 제 기본을 잃지 않으면서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얼마나 열정적일 수 있는지 과시하는 것 같다. 


국립극장의 레퍼토리가 되면서 전반부에 추가된 프리퀄 부분은 젊은 단원들이 ‘현대적인 한국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를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무용수들이 흰 운동복 차림으로 등장해 고민에서 해결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 모양새다. 직육면체 상자들로 높게, 어딘지 위태롭게 쌓인 성 위에서 홀로 전통적인 춤사위를 보여주는 무용수가 문을 열면 성벽 여기저기에 다른 무용수들이 걸터앉는다. 성벽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일까, 무용수들의 모습은 정적이다. 그러다 전자음악이 흐르고 누군가 뒤에서 나와 성을 무너뜨리면 비로소 무용수들은 자유롭게 몸을 풀기 시작한다. 전형적인 한국무용 춤사위가 강렬한 현대적 안무로 변형되다 압도적인 군무로 귀결되고, 무용수들은 어디까지가 한국적이고 어디서부터 현대적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이 모든 과정이 너무나 매끄러워서 마치 한국무용의 DNA가 이미 상당한 변형이 이루어졌음을, ‘전통’이라는 위태로운 성벽을 깼을 때 비로소 시대에 맞는 한국춤을 출 수 있다는 깨달음을 전하는 듯하다. 


‘가무악칠채’는 관객을 자연스레 끌어들이며 대중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도 점수를 줄 만하다. 통상적인 무용 공연과 달리 유머 코드를 곳곳에 배치해 객석에서는 자연스레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온다. “관객이 칠채를 알아가고, 거기서 발생하는 감정까지 느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안무가의 바람처럼, 객석 여기저기서 칠채 장단에 맞춰 박수를 치며 흥에 겨워 그 가락에 몸을 탄다면 공연은 그야말로 성공적일 터다. 


방탄소년단 슈가가 부른 ‘대취타’가 빌보드 차트에 오르고 홍대 클럽에서 판소리를 ‘떼창’하는 시대, 젊은 춤꾼들에게 ‘대중적인 한국무용’에 대한 고민은 어쩌면 필연이다. “명금일하 대취타 하랍신다”라는 호령으로 시작하는 ‘대취타’ 이전에, 이와 유사한 길군악의 호령으로 시작하는 이재화의 ‘가무악칠채’가 있었다. 전통 현대화의 예술적 실험이 알게 모르게 대중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한국무용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가무악칠채’에서 찾고 싶은 이유다.


이번 공연에는 국립무용단의 젊은 스타 무용수 최호종과 정가 가객 박민희의 가세로 칠채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줄 예정이다. 우리 ‘가무악’에 최첨단 테크놀로지까지 결합해 ‘칠채’의 더욱 화려한 시각화로 절정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려는 복안이라니,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국립무용단
‘가무악칠채’
2020년 11월 20~22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R석 5만 원 S석 3만 원 A석 2만 원
02-2280-4114

예매 링크 바로 가기


유주현  ‘중앙SUNDAY’ 공연 담당 기자.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사이트 지도

사이트 지도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