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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호 Vol.370

절절한 애원성과 꿋꿋한 수리성이 깃든 ‘수궁가’ 완창

미리보기 셋 |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김수연의 수궁가-미산제'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내공으로
청중 사로잡는 김수연 명창의 수궁가를 만나본다

 

11월, 국립극장 완창판소리는 김수연 명창의 미산제 ‘수궁가’ 무대다. 김수연 명창은 절절한 애원성과 곰삭은 수리성을 제대로 구사하는 분이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발성과 적절한 호흡으로 청중에게 다가가는 힘은 김 명창의 성음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이의 성음 구사력은 당대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쉬어서 곰삭은 목소리는 짙은 호소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김수연 명창은 ‘수궁가’의 대표적 명창이지만, 고故 성우향 명창에게서 전수傳受한 김세종제 ‘춘향가’와 강산제 ‘심청가’ 공연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특유의 미감을 발산한다. ‘흥타령’이나 구음으로 질러내는 소리에서도 깊은 한의 정서를 제대로 펼쳐 보인다. 

 

군산에서 소리에 입문한 김수연 명창
김수연 선생은 군산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에 호남평야의 기름진 쌀을 일본으로 실어가기 위해 개발한 항구도시인 군산은 각별하게 의미 있는 도시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濁流’는 군산 항구의 미곡상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제대로 된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갑자기 발달한 도시에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항구를 감싸고 선술집이나 근사한 요릿집이 있고, 골목에는 건달들이 어깨를 툭툭 치며 왁자하게 휘젓고 다닌다. 도시 분위기는 활기차지만, 저변에 음울하면서도 절망적인 흐름이 있다. 군산은 이러한 분위기에 어울리게 국악이 공연되는 시장이 있어왔고, 수많은 명인명창이 국악원을 근거로 활약하고 있었다. 소녀이던 김수연은 국악원 앞을 지나면 발걸음이 절로 멈춰 서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고, 그 소리가 저절로 귀에 들어왔다고 한다. 김수연은 김재경·최광열·강도근 같은 당대의 소리꾼들에게서 소리를 배웠다.

 

박초월 문하에 들어서서
군산에서 소리에 갈증을 느낀 김수연 선생은 1960년대 후반, 서울로 올라와 박초월 명창 문하에서 소리 공부에 정진했다. 아호가 미산인 박초월 선생은 당대 최고봉 명창이었다. 높은 청으로 질러내는 애원성은 뭇사람의 애간장을 태웠고, 어렵고 서러운 사람들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그의 소리는 수리성이면서도 애원성이 가득해 우울한 시대 분위기를 타고서 절정의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김수연 명창은 스승의 그런 점을 판박이처럼 배워서 자신의 소리로 만들었다. 


김수연 명창의 소리를 듣노라면, 박초월 명창의 한스러운 육자배기 목을 제대로 이어받아 한을 펼쳐내는 표현력이 절정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든다. 스승보다 청이 약간 낮지만, 그래서 오히려 울림은 크고 깊고 넓어 우리의 지친 마음까지 다 끌어안고 고단한 마음을 달래준다. 그래서 그이의 소리를 들으면 단박에 매료되고, 그 정서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김수연 명창은 소리 공부에 전념해 1980년에 ‘수궁가’를 자신의 소리로 소화했고, 이어서 ‘흥부가’도 배워 미산제 전수의 선봉에 서게 됐다. 김수연 선생은 박초월 명창의 소리를 가장 잘 계승한 분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수연 명창은 1978년 남원춘향제 판소리 명창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1989년에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명창부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경연 대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한다.

 

미산제 수궁가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시간
‘수궁가’는 바다와 육지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토끼와 자라의 재치 싸움을 다룬다. 동물의 눈을 빌려 강자와 약자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그려내어 해학과 풍자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박초월 명창이 다듬어 새롭게 유파로 정착시킨 미산제 ‘수궁가’는 동편제 계통으로, 송흥록→송광록→송우룡→유성준→박초월→김수연으로 내려온 족보 있는 소리제다. 박초월 명창은 유성준 선생에게서 ‘수궁가’를 배웠지만, 스승의 동편제와는 달리 특유의 애원성을 가미해 감칠맛 나는 소리로 변화를 거듭한다. 


용왕이 병에 걸림으로써 시작되는 ‘수궁가’는 당대 사람들의 국가와 정치에 대한 의식과 현실을 잘 드러내고 있다. 무능한 용왕이 병에 걸려 탄식하는 대목과 이를 바라보는 냉소적 태도는 국가나 정치 현실을 대하는 당대인의 의식을 보여준다. 물고기들이 어전회의를 하는 장면에서는 부패한 위정자들의 모습을 고발한다. 별주부는 충신의 이미지를 담고 있지만, 이면에 입신양명에 목말라하는 지배층의 욕망을 볼 수 있다. 현실을 예리하게 풍자하고 비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수궁가’가 우화의 형식을 취한 데 있다. 약자 중에서도 작고 보잘것없는 토끼가 수궁 한복판에서 재치 하나만으로 탈출하는 것은 수궁가의 백미다. 그중에서도 동편제의 우직함과 서편제의 계면성이 조화를 이룬 미산제 ‘수궁가’는 정서를 극적으로 표출하며 관객을 몰입시킨다. 


김수연 명창의 깊고 무거운 ‘수궁가’는 명고수 김청만·조용복 두 분이 북 반주로 호흡을 맞춘다. 어려서부터 악극단에 참여해 평생을 북과 함께 살아오신 국가무형문화재 김청만 명인, 전주 태생으로 국립국악원에서 활동하는 조용복 명고수의 북 반주로 이날의 소리판이 빛나게 될 것이다. 11월은 놓쳐서는 안 될 최상의 무대, 김수연 명창의 미산제 ‘수궁가’를 들을 수 있어서 행복한 달이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김수연의 수궁가-미산제’
2020년 11월 21일
국립극장 하늘극장
전석 2만 원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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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대 고려대학교 교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심청전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판소리학회 회장과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무형문화재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세종시 무형문화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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