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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호 Vol.371

국립무용단 윤성철

예술가의 초상


“한국춤은 음악을 몸으로 느끼는 과정이에요. 단순하게 이해하던 장단과 가락 하나하나가 어느 순간 피부로 와닿는 걸 느끼죠. 그걸 느끼는 재미예요.” 

“제 이름이 성철이잖아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죠. 그거 제가 한 말이에요.”

사뭇 진지한 얼굴로 읊조리는 ‘아재 개그’가 당황스럽다. 국립무용단 윤성철 수석에게 근 10년 만에 국립극장에서 솔로를 추게 된 감회를 물으니 돌아온 대답이다. 입단 26년 차를 맞는 고참답게 ‘라떼는 말이야’도 자연스럽다. 

“긴장도 안 되고 재밌어요. 옛날엔 이런 기회 엄두도 못 냈거든요. 그동안 극장이 변화하고 홍보·기획이 강화된 걸 새삼 느끼고 있어요. 굳이 제가 고민하지 않아도 작업 능률이 오르더군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정말 좋은 환경의 도움을 많이 받는구나 싶어요. 일례로 저희 신입 단원일 때는 4층 연습실까지 직접 북을 들고 오르내렸는데, 어느 순간부터 스태프들이 다 해주더군요. 예술가 입장에서 좋아졌지만 부담스럽긴 해요. 지원이 많으니까 그만큼 잘해야 되는 거죠.”

고참 단원 일곱 명이 각자의 장기인 전통춤을 모티프로 재창작한 솔로 무대를 엮은 공연 ‘홀춤’에서 한량무를 추는 그는 막바지 연습으로 분주했다. 풍류를 즐기는 사내의 모습에 굳건하면서도 변화무쌍한 자연의 이치를 엮었다는 뜻에서 ‘산산·수수山散·水守’라는 제목을 붙였다.

“코로나 때문에 종종 산에 올라 자연 경치를 봤거든요. 제주도에 갔었어요. 숙소에서 한라산이 오름 때문에 막혀서 안 보이더군요. 마지막 날 아쉽게 돌아섰는데, 공항에 오니 멀리서도 더 잘 보이는 거예요. 그걸 보고 제목을 ‘산산·수수山散·水守’라 지었어요. 뫼 산 자와 흩어질 산 자를 써서요. 전통춤을 큰 산이라 하면 바로 앞에서는 얼마나 큰지 몰라도 멀리서 보면 보인다는 거죠. 반대로 물은 멀리서 보면 잔잔해도 바로 앞에서 보면 힘차게 파도치고 있잖아요. 그렇게 위대한 자연처럼, 멈춘 듯 멈추지 않은 정중동이 바로 우리 춤인 것 같아요. 사실 민속춤의 거의 모든 모티프가 농경 생활에서 나왔거든요. 한국춤은 곧 자연인 셈이죠.” 

‘홀춤’의 콘셉트가 전통춤에 자기만의 색을 넣는 ‘신전통’이라지만, 특별히 변형에 중점을 두지는 않았다. 삼현육각이 다 동원되는 조흥동류 한량무의 음악을 거문고산조 반주로 만든 것이 가장 큰 변화다. “보통 즉흥 시나위 음악에 맞추기도 하는데, 오경자의 거문고산조 ‘산행’을 듣고 이런 음악에 맞춰봐도 재밌겠다 싶었어요. 조흥동류 한량무는 선생님이 1982년에 마흔 살쯤 되셨을 때 만드신 작품인데, 지금 제가 그 정도로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5호 한량무 이수자인 윤 수석은 국립무용단 대표작 ‘향연’의 안무가이기도 한 조흥동 선생의 애제자다. 대학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운 그에게 레슨비 한 푼 받지 않고 모든 걸 전수해 준 아버지 같은 스승이다. “제가 뭘 해도 ‘조흥동 냄새난다’고들 하시는데, 저는 그 소리가 듣기 좋습니다. 남들은 내 색깔이 뭐냐고 물을지 몰라도, 전통은 본래 춤의 매력을 그대로 따라가는 데서 시작하는 거니까요. 좀 더 지나면 내 춤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초조하지 않아요. 거문고산조로 음악을 싹 바꿨는데도 선생님 색이 난다고 하니 저는 오히려 더 즐겁네요. 케이팝 춤이야 멋있게 강렬하면 되지만, 전통춤은 내면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어렵죠. 흥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하는데, 한량무가 그런 걸 표현하기 참 좋은 춤이에요.”

사실 ‘한량무’ 하면 부채다. 한량무의 미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갑자기 가방에서 커다란 부채를 꺼낸다. 그냥 부채일 뿐인데, 살과 면을 쥐락펴락하며 폈다 접었다 돌리고 주무르는 품새가 사람을 홀리는 듯싶다. “부채라는 게 어려운 소품이에요. 부채 펴는 것 하나도 기술이 필요하고, 돌릴 때도 앞뒤 생각하며 돌려야 해요. 단순한 것 같은데 어렵고, 그래서 더 재밌어요. 부채 하나로 춤의 확장성이 생기니까요. 부채가 뭘 상징하냐고요? 옛 선비들이 선풍기가 없어서 들고 다녔을까요?(웃음) 뭔가 보여줄 듯 말 듯, 한마디로 신비주의죠.”

한량무를 논하며 ‘영원한 스승’ 조흥동 선생에 대한 헌사를 빼놓을 수 없다. “운 좋게 석 달 학원 다니고 무용과에 합격했어요. 들어가 보니 제가 몸치인가 싶더군요. 한국무용 전공생 스무 명 중 제가 청일점이었는데, 정말 못 추는 거예요. 한 선배가 남자 선생님한테 배워야 한다며 조흥동 선생님께 저를 데려갔어요. 4년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학원에 나갔죠. 레슨비 대신 청소를 했는데, 그래서 더 못 빠진 것 같아요. 청소는 꼭 해야 하니까.(웃음) 당시 선생님이 호적시나위 추시는 걸 보고 반했어요. 남자춤이란 저런 거구나 싶었죠.”

돈도 없고 실력도 없던 그를 조흥동 선생은 무척 아꼈다. “거장이라 무서울 줄 알았는데, 저를 막내라고 귀여워해 주셨어요. 남자 제자가 엄청 많은데, 다른 선배들한텐 무섭게 대하시면서도 저한테는 화를 내신 적이 없죠. 딱 한 번 크게 혼난 기억은 있네요. 4학년 때 처음 국립무용단에 객원 솔리스트로 출연하게 됐는데, 리허설 전날 군대 간 선배가 찾아와서 술을 엄청 먹었거든요. 리허설하다 중간에 유아방에 들어가 잠시 드러누웠는데, 깨고 보니 다 끝난 거예요.(웃음) 그때 단원 50명 앞에서 크게 혼이 났죠.”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더 잘해주시던” 애틋한 스승을 만나면 지금도 그는 꼭 “‘치맥’을 먹으러 가자”고 권한다. “연습이 끝나면 선생님이 항상 근처 치킨집에 데려가서 치맥을 사주셨어요. 저희가 한창 먹을 때니까 선생님은 날개만 드셨는데… 감히 날개를 건드릴 순 없었죠.(웃음) 그때 생각했어요. 나중에 선생님이 연로하시면 다른 건 몰라도 치맥은 꼭 사드려야지. 그래서 요즘도 뵈면 꼭 치맥 드시러 가자고 합니다.” 


멈춤 없는 정중동의 미학 ‘산산·수수山散·水守’
그는 춤을 늦게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여자애들과 어울리려고” 농악부에 들어간 게 시작이었다. “당시 88올림픽 매스게임에 나가보려고 농악부를 만든 건데 인문계 고등학교는 못 나가게 된 거예요. 학교에서 농악부를 없애려 하길래 끝까지 버텼죠. 사실 농악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니었고, 놀기 좋아하는 친구들이 농악부실을 아지트로 쓰려고 그랬던 거죠. 그런데 친구들이 사물놀이를 좀 연습하더니 국악경연대회에 나가 1등을 해버린 거예요. 그 친구들 때문에 국립무용단 공연을 보게 됐는데, 국립극장에 그만 반해 버렸어요. 대극장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 거대한 막이 쳐진 걸 보니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댕’ 하고 종 치는 소리가 마음을 울리더군요. 무대에 남자 무용수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에 빠져들었죠.”

올해로 입단 26년 차인 그는 아홉 명의 예술감독을 거치는 동안 안 해본 작품이 없다. 세월이 흐르며 생각도 변하지만, 딱 하나 변하지 않는 생각은 ‘작품이 초연으로 끝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란다. “빛나는 작품이야 많죠. 그런데 ‘춤. 춘향’ ‘시간의 나이’ ‘향연’ ‘도미부인’ 같은 대표작들도 사실 몇 번씩 리바이벌하면서 탄탄해졌거든요. 초연 때 부족하더라도 장점을 살려서 발전시켜 가야 레퍼토리가 늘어나죠. 조세 몽탈보의 ‘시간의 나이’도 솔직히 초연 때는 망했다 생각했어요. 저도 안무 지도를 했지만, 안무가와 우리가 교감이 잘 안 되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서너 번 공연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생기고, 프랑스에서는 크게 성공했죠. 요즘 무용계 추세가 소규모로 흐르지만, 국립무용단은 큰 스케일의 작품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잖아요. 바깥에선 할 수 없는 대작을 꾸준히 개발하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로 많은 것이 달라진 올해, 거의 10년째 몸담아 온 ‘국립극장 전통예술아카데미’도 비대면으로 전환됐다. 일반인 무용 교실을 온라인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초유의 사태다. “코로나가 내년에도 어찌 될지 모르니까요. 실험 삼아 창극단·무용단·관현악단에서 강사 한 명씩 영상 강의를 찍었어요. 10년, 15년씩 배우러 오시는 분도 많은데, 비대면인데도 많이들 신청하셨더군요. 10개월 수강하고 무대에 올리는데, 샌님같이 보이는 분들이 막상 무대에서는 다 중앙에 서고 싶어 하시는 게 재밌어요. 아들딸들이 화환 들고 보러 오니 욕심이 나시나 봐요.” 

그런 ‘회원님들’이 그는 마냥 부럽다. 본인이 20년 넘게 수영 강습을 받으러 다니는 이유와도 비슷하단다. 누군가에게 지도를 받으며 취미를 즐기면 즐겁기 때문이다.그러고 보니 부채를 쥐고 거닐며 자연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될 것 같다. “한량무를 그럴싸하게 추려면 얼마나 걸릴까” 물으니 “3개월 만에 추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의 ‘홀춤’을 꼭 보러 가야겠다.

‘예술가의 초상’을 국립극장 유튜브에서도 만나보세요.

youtube.com/ntong2


유주현 ‘중앙SUNDAY’ 공연 담당 기자.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사진 황필주 STUDIO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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