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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호 Vol. 407

언어의 안과 밖에서 생각하다

내다 / 스페셜 1

국립극장 기획공연 <맥베스> 프리뷰

언어의 안과 밖에서 생각하다


여섯 명의 농인 배우와 네 명의 소리꾼이 등장하는 <맥베스>가 6월 13일부터 16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 무대에 오른다. 

연출가 김미란이 총 5막으로 이루어진 『맥베스』를 16개 장면으로 압축했다. 





연출가 김미란은 2022년에 국립극단에서 <어쩌면 이것은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미지의 세계로, 엘사 아님)>이라는 공연을 농인 배우 박지영, 비장애인 배우 이원준과 함께 만들었다. 두 배우가 배우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각자의 언어로 어디까지 대화할 수 있을지를 주제로 만든 공연이다. 무대에서 나누는 이들의 대화는 완전한 소통을 향해서 달려나가는 듯하지만, 목표 지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미끄러지고 만다. 매 장면의 구성이 그러하다. 두 배우는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서로를 격려하며 끝을 맺는다. 김미란 연출가는 비장애인의 기준으로 재단되지 않는 박지영의 세계를 온전히 보여주고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한국에는 두 개의 공식 언어가 있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국수어 역시도 공용어로서 인정받고 있다. <맥베스>는 한국어와 한국수어가 대등하게 무대 위에 올라가는 공연이다. 이 공연에서 ‘대등하다’의 의미는 ‘단어 대 단어’ ‘소리 대 소리’가 일대일로 완벽하게 대칭된다는 뜻이 아니다. <맥베스> 무대 위의 모든 말과 소리는 전작에서 박지영 배우와 이원준 배우의 말이 같지 않았던 것처럼 차이를 드러낸다. 김미란 연출가는 이 차이를 감추지 않고서도 대등하게 소통의 기능을 하는 두 개의 언어를 무대 위에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쓰인 작품이다. 고전을 수어로 무대화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소리꾼과 농인 배우가 무대에서 어떻게 만나는가? 이런 질문을 품고 5월 13일과 14일 연습실을 방문했다. 13일은 음악 연습을, 14일은 안무 연습을 하는 날이었다. 연습 시작 전 김미란 연출가와 각색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미란 연출가는 각색자가 따로 있어야 할 것인지를 먼저 고민했지만, 그렇게 된다면 배리어프리를 적극 활용한 공연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본인이 직접 농인 배우들과 함께 각색 작업에 들어갔다. 먼저 한 달 동안 『맥베스』의 모든 대사, 즉 번역된 한국어를 한국수어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했다. 모든 말을 수어로 직역하듯이 바꾸고 보니, 재미가 반감되는 부분도 있었고, 그대로 번역하는 것보다 수어에 움직임을 추가해 시각적 이미지를 강조하니 의미 전달이 더 분명해지는 부분도 있었다. 셰익스피어 희곡을 공부하면서 이 희곡에 청각적 요소가 얼마나 많이 담겨 있는지도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나 한국 시의 각운처럼 영문의 라임이 반복되면서 두드러지는 리듬감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농인 배우는 이 부분을 수어와 몸짓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극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인 죽음을 뜻하는 수어를 희곡의 라임이 반복되듯이 움직임과 함께 여러 차례 반복해서 보여주는 구성을 취했다. 해외의 셰익스피어 공연 사례를 연구하고 배우와 대본을 줄여나가는 과정을 워크숍처럼 진행하면서 또 한 달 반의 시간이 흘러갔다. 


연출가는 이 과정을 토대로 원작 『맥베스』에서 16개 장면을 골라냈다. 배우와 장면의 상황을 고려해 선별한 대목이다. 관객과 꼭 공유하고 싶은 대사가 있는 장면, 모든 장면마다 서사를 깊이 생각하며 짚고 넘어가지 않아도 되는 장면을 모았다. 분절적 장면이 모여 마치 하나의 주제를 전달하는 콘서트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연출의 방향성을 정했다. 연극이지만 여러 곡이 무대에 올라가는 콘서트처럼 관객에게 다가가기를 원했다. 


김미란 연출가는 공연이 농인 관객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 관객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며 소리꾼과도 장면 만들기를 하고 있다. <맥베스>에서는 소리꾼이 변사처럼 존재한다. 음성 해설을 전통연희에서 변사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변주했다. 기능적 해설이 아니라 이야기가 재미있게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하다 찾게 된 방식이다. 이 공연에서는 한국어·한국수어·소리꾼의 소리가 일대일 대응으로 딱 맞아떨어지지 않은 채로,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며 극의 안과 밖에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공연 대본은 이 작업의 결과물이다. 배리어프리를 위한 대본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세 가지인 한국어·한국수어·소리꾼의 소리가 유기적으로 무대 위에 펼쳐질 수 있도록 구성한 연출대본이라고 할 수 있다.





각 파트의 느슨한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연습 시간에 목격할 수 있었다. 이들이 서로 큐를 주고받는 방식은 빛을 통한 소통이었다. 연습실 바닥에는 빛이 들어오는 LED 바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배우는 자신의 박자와 큐 확인을 LED 바에 빛이 들어오는 방식으로 확인했다. 이향하 음악감독에게 “박자에 대해서 서로 확인하고 넘어가는 지점이 인상적이다. 음악이나 음향은 공연에서 어떻게 쓰이고, 연습은 어떻게 진행해 나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다음과 같은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음악이나 음향(청각적 신호)은 농인 배우에게는 시각적 신호로 공유된다. 모든 음악은, 수어와 장면이 완성되면, 거기에서 느껴지는 고유의 리듬과 길이, 뉘앙스 등을 찾는 과정으로 시작된다. 각각의 배우가 제시하는 언어의 리듬을 음악화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을 다시 장면과 맞추면서 전체적 길이와 뉘앙스를 정해 신호를 만든다. 음악가에게는 청각적 신호(메트로놈, 인이어 시스템, 음악의 프레이즈 등), 배우에게는 시각적 신호(LED 시스템, 조명, 배우 간의 호흡 등)가 정해진다. 공연도 그 신호에 따라 진행될 예정이다. 연습 과정에서는 각각의 파트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신호를 확인할 수 있는 구간과 방법 등을 찾고, 적용하고, 수정해 나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예상을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음악과 배우(한국수어와 한국어)의 싱크가 100퍼센트 맞으면 예상과 다르게 어떤 어색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전혀 다른 구간을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묘하게 어우러지는 음악(장면)이 있다. 왜 그런지는 계속 찾아가고 있다.” 


<맥베스> 공연팀은 연습실에서 배우 금예지·김우경·박지영·오서진·우지양·이혜진과 소리꾼 김소진·김율희·이승희·추다혜가 무대 위에서 서로 정확하게 역할을 다하면서도 여유로울 수 있는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이로써 연습 기간이 넉 달째로 접어들고 있다. 연습 막바지에는 이들 각자의 언어가 무대를 넘어 관객에게도 자연스럽게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이다. 각자의 언어를 효율적으로 연결해 줄 수 있는 언어 밖의 무언가를 계속해서 탐색해 나갈 것이다. 신호 체계, 움직임, 연출적 시선 등 언어 밖의 많은 요소를 무대로 불러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가는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이들의 무대를 기대하며 미리 박수를 보낸다.



글. 전강희

영문학과 연극학을 전공하고 예술 현장에서 공연평론가·드라마투르기·축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새로운 극적 언어를 탐색하고 장르 간 해체와 협업이 활발한 공연 만들기에 관심이 많다.

사진. 전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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